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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헬조선의알파고 2020. 4. 3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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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서른여섯 젊은 의사가 남긴 2년 간의 기록.서른여섯, 전문의를 앞둔 신경외과 레지던트 마지막 해. 하루 열네 시간씩 이어지는 혹독한 수련 생활 끝에 원하는 삶이 손에 잡힐 것 같던 바로 그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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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으로 투병중인 나에게 이 책은 각별한 위로와 용기, 지혜의 빛을 준다.
  • 죽어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에게 삶에 대하여 가장 많이 가르쳐준다
  • 이 책은 O형 혈액처럼 누구에게나 생명의 피를 나누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책들 중 하나이다.
  • 다가서려고 하지만 다가설 수 없는 풍경을 위해 한없이 노력하는 한 사람의 마지막 선물은 죽음에 대한 자세를 생각하게 한다. 시간 너머의 시간을 꿈꾸며 시간을 채우는 마음은 내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없어진 세상에 나는 어떤 모습인지, 무엇으로 기억될지를 생각하며 비로소 나는 나를 만나게 된다. 어쩌면 죽음은 가까이 가지만 갈 수 없는 세계를 잊지 않게 하는 장치인지도 모른다.
  •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독자여!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 놓으라. 브루크 풀크 그레빌 남작, <카엘리카 소네트 83번> You that seek what life is in death, Now find it air that once was breath. New names unknown, old names gone: Till time end bodies, but souls none. Reader! then make time, while you be, But steps to your eternity. Baron Brooke Fulke Greville, “Caelica 83”
  • 서른여섯 살에 나는 정상에 올랐다. 드디어 약속의 땅이 눈앞에 보였다. 길르앗에서 예리코까지, 그 너머 지중해까지.
  • 달 전에 그녀가 제안했던 부부 관계 상담도 받아보자고 했다. 하지만 루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지경이 되자 흐릿하게 혼란스러운 상황은 사라지고 서운한 감정의 단단한 모서리만 남게 되었다.
  • 년 동안 알고 지낸 십여 명의 절친한 친구들이 나를 반겼고, 그들의 환영 인사는 그들의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와 뒤섞였다.
  • 나는 며칠만이라도 수술실에서 벗어나기를 고대해 왔다. 충분한 잠, 휴식, 기분전환, 그러니까 바로 평범한 일상의 맛.
  • 내 주위의 삶과 나를 분리하고 있는 건 죽음을 논하는 책이 아니라 죽어가는 나 자신의 몸이었다.
  • 아주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으면 이 방에 있는 진찰용 침대에 누워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제 나는 그 침대에, 완전히 깬 상태로 누워 있다.
  • “의사 선생님께서 곧 오실 거예요.” 그 말과 함께 내가 꿈꿔왔으며 곧 실현되려던 미래, 그리고 오랜 세월 부단히 노력하며 도달하려 했던 삶의 정점은 사라지고 말았다.
  • 내가 아는 의학이란 부재(不在)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부재. 내 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돌아와 식은 음식을 데워 먹었다.
  • 늦은 밤이나 주말에야 얼굴을 보는 아버지는 부드러운 애정과 차가운 근엄함을 함께 보여주었다.
  • “최고가 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란다. 최고인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보다 1점만 더 받으면 돼.”
  • AP제도
  • 진지하게 말하자면,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편이었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우리 자신이 고통받을 때 다른 사람의 명백한 고통에 얼마나 무감각해지는가에 주목했다.
  • 반성하지 않는 삶이 살 가치가 없다면, 제대로 살지 않은 삶은 뒤돌아볼 가치가 있을까?
  • 희붐한
  • 나는 아이나 노인의 지혜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하나의 순간, 하나의 정점이 있다. 쌓이고 쌓인 경험들이 삶의 세부사항들에 의해 마모되어버리는. 바로 이런 순간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현명해지는 순간이다.
  • 아비시니아
  • 언어는 고작 몇 센티미터 두께의 두개골에 보호받는 우리의 뇌가 서로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단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삶의 의미와 미덕은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깊이와 관련이 있다. 인생의 의미를 뒷받침하는 것은 인간의 관계적 측면, 즉 ‘인간의 관계성’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뇌와 신체 그 자체의 생리적인 명령에 따라 일어나며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열정, 갈망, 사랑 등 우리가 체험하는 삶의 언어가 신경 세포, 소화관, 심장박동의 언어와 연관되는 뭔가 복잡한 방식이 틀림없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 위대한 문학 작품은 나름의 고유한 도구들을 독자에게 쥐어주며 그 어휘를 사용하도록 이끈다.
  • 휘트먼이 우리보다 더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의 실패는 우리의 이해에 큰 도움을 주었다.
  • 내 논문인 <휘트먼과 인격의 치료>는 좋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문학 비평뿐만 아니라 정신의학과 신경과학의 역사가 많이 섞여 있어 정통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영문학과 잘 어울리지 않는 논문이었고, 나 역시 영문학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 삶과 죽음의 문제에 관하여 도덕적인 견해를 세우려면 그 문제와 관련된 직접적인 경험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무게감을 잃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걸음 물러나서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재확인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직접적인 경험이 필요했다.
  • 도덕적인 명상은 도덕적인 행동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 메스는 아주 날카로워서 피부를 자른다기보다는 지퍼를 여는 느낌이 든다. 피부가 열리고 그 아래에 숨겨진 금단의 힘줄이 드러나면, 단단한 각오가 무색하게도 불시에 무안함과 흥분을 느끼게 된다. 의대생의 통과 의례인 시체 해부는 지극히 신성한 영역을 침범하는 작업이기도 해서, 혐오감, 흥분, 욕지기, 좌절감, 경외감 등 무수한 감정을 자아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단조로운 수업 과정의 하나가 된다. 연민과 무감각 사이에서 그때그때 감정이 교차한다.
  • 정중신경을 해부하고, 골반을 톱질하여 반으로 자르고, 심장을 잘라서 여는 것으로 시체 해부 과제를 마치면 이제 무감각이 찾아온다.
  • 훈련에 임할 때는 눈앞의 시체를 반대로 생각한다. 마네킹은 진짜 사람으로, 진짜 시체는 가짜로. 하지만 첫날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푸른 기를 살짝 띤 채 부풀어 오른 내 첫 시체를 보았을 때, 그는 확실히 죽어 있었지만 또한 완전한 인간이기도 했다. 앞으로 넉 달 안에 이 시신의 머리를 쇠톱으로 이등분해야 한다는 것이 왠지 양심에 걸리는 일로 느껴졌다.
  • ‘안면실인증은 얼굴을 인지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신경 질환이다.’ 곧 나도 그 질환에 걸려 태연히 쇠톱을 손에 쥐고 있겠지.
  • 얼굴을 천으로 덮어놓고 이름도 모른 채 해부 실습을 했지만, 그래도 시신에게서 인간성이 갑자기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맡은 시체의 위를 절개하여 열었다가 채 소화되지 않은 모르핀 알약 두 정을 발견한 적이 있다. 생전에 그는 홀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며 약병의 뚜껑을 더듬어 이 약을 꺼냈을 것이다.
  • ‘burke’라는 동사가 생겨날 정도였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이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숨을 막히게 하거나 목을 졸라, 혹은 해부용 사체로 팔기 위해 은밀하게 살해하는 것.’
  • 해부실 환경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 즉 의사들은 사체 기증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증자들은 실제 상황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 해부학 교수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수술을 할 때에도 의사가 환자한테 그 끔찍한 세부 사항들을 낱낱이 얘기하지는 않잖나. 그랬다간 환자가 수술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 결국 시체 해부는 신성 모독이라기보다는 해피 아워
  • 에 술 마시러 가는 것을 방해하는 일이 되어버리고, 이런 깨달음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어쩌다 한 번씩 반성의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마음속으로 시체들에게 사과했다. 죄의식을 느껴서가 아니라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 시체 해부뿐 아니라 모든 의학은 신성한 영역을 침범한다. 의사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환자의 신체를 침입해 들어간다. 그리고 환자의 가장 취약하고, 가장 신성하며, 가장 은밀한 부분을 들여다본다. 그런 다음 환자를 회복시켜 세상으로 돌려보낸 뒤 다시 그에게서 빠져나온다. 신체를 물질이자 구조로 보는 것과 인간의 극심한 고통을 줄이는 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마찬가지 이유로 인간의 극심한 고통은 그저 하나의 교육 수단이 된다.
  • 의학도인 우리는 죽음과 고통, 그리고 환자를 돌보는 데 수반되는 여러 업무에 직면했다. 배우는 과정이라 실제로 책임을 지는 일은 없었지만, 그 무게를 희미하게나마 느낄 순 있었다.
  • 사람을 사랑하는 그녀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어 보였고, 그런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 “하지만 가장 확실한 건 할머니가 삶에서 천천히 멀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할머니는 기도를 그만두었을 때쯤 사실상 다른 모든 일도 멈추었다.”
  • “우리는 엄청난 투쟁과 고통을 딛고 이 세상에 오지만, 세상을 떠나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 내가 처음으로 목격한 탄생은 또한 처음으로 맞닥뜨린 죽음이기도 했다.
  • 나는 대기실로 나가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했다. 열두 명 정도 되는 대가족이 뛸 듯이 기뻐하며 서로 정신없이 악수와 포옹을 나누었다. 나는 신으로부터 기쁨에 넘치는 새 약속을 받고 산꼭대기에서 돌아온 예언자가 된 기분이었다. 출산 과정의 모든 혼란은 사라졌고, 방금 전에 나는 이 가족에게 누군가의 조카딸, 누군가의 사촌이 될 새로운 식구를 품에 안고 있었다.
  • 사뮈엘 베케트의 은유만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느 날 태어났고, 어느 날 죽을 거요. 같은 날, 같은 순간에. 여자들은 무덤에 걸터앉아 아기를 낳고, 빛은 잠깐 반짝이고, 그러고 나면 다시 밤이 오지.”
  • 얼마나 중대한 판단인가. 내가 여태껏 살면서 프렌치 딥 샌드위치와 루벤 샌드위치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판단을 해본 적이 있었나? 어떻게 하면 의사다운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 나는 의과 대학원 동기인 마리와 함께 교대 근무를 했다. 몇 주 동안 쪽잠을 자며 야간 근무를 한 뒤, 마리는 휘플 수술의 보조를 맡게 되었다. 휘플 수술은 췌장암을 절제하기 위해 복부의 여러 장기를 재배열하는 복잡한 수술이다. 보통 이 수술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길게는 아홉 시간 동안 똑바로 서 있어야 한다. 움직여봤자 움츠리는 정도가 전부다. 학생이 휘플 수술에 보조로 선택받는 건 꽤 유익한 경험이다. 최고참 레지던트만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만큼 극도로 복잡한 수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외과의의 기술을 궁극적으로 시험하는 현장이기에 사람을 녹초로 만든다. 나는 수술이 시작된 지 15분 만에 복도로 나와 울고 있는 마리를 보았다. 외과의는 항상 암의 전이를 확인하기 위해 작은 구멍을 낸 뒤 소형 카메라를 삽입하는 것으로 수술을 시작한다. 암이 광범위하게 전이되었다면 수술은 무용지물이므로 당연히 취소된다. 복도에 서서 닥쳐올 아홉 시간을 기다리던 마리는 내심 이런 생각을 했다 ‘너무 피곤해. 하느님 제발, 전이가 있게 해주세요.’ 실제로 전이가 확인되어 환자의 절개 구멍은 봉합되고 수술이 취소되었다. 마리는 처음엔 안도했지만, 곧이어 깊은 괴로움과 수치심에 시달렸다. 그녀는 수술실을 뛰쳐나왔고, 고해 신부가 필요하던 차에 나를 보았다. 나는 그녀의 바람대로 해주었다.
  • 마이모니데스
  • 오슬러
  • 내가 아는 건, 그리고 물론 당신도 잘 알겠지만, 당신의 삶이 이제 막, 아니, 이미 변했다는 겁니다. 앞으로 기나긴 싸움이 될 거예요. 남편분도 잘 들으세요. 서로를 위해 자기 자리를 잘 지켜줘야겠지만 필요할 때는 꼭 충분히 쉬어야 합니다. 이런 큰 병을 만나면 가족은 하나로 똘똘 뭉치거나 분열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죠.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서로를 위해 각자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해요. 아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침대 곁에서 밤을 새우거나 하루종일 병원에 있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 나는 창백하고 칙칙하고 멍해 보이던 그들의 얼굴이 결연한 표정으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아레테(Arete, 덕성스러운 탁월함)
  • 우리는 의학 드라마를 시청하던 입장에서 그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성장하게 될 터였다.
  • “신경외과 레지던트들은 최고의 외과의가 아니라 이 병원에서 최고의 의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해주세요.”
  •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뿐이에요. 병원 생활이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요.”
  •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이 서류들이 그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위험과 승리로 가득한 이야기들의 조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 나는 분노와 슬픔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다.
  • 그때부터 나는 환자를 서류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서류를 환자처럼 대하기로 결심했다.
  • 때때로 죽음의 무게가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트레스와 고통이 공기 중에 감돌았다. 평소에는 그 공기를 들이마시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습하고 후텁지근한 날처럼, 공기의 무게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여름날의 정글에 갇혀 온몸이 땀에 젖은 채, 환자의 가족이 흘리는 눈물을 비처럼 맞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 기량이 발전할수록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점점 더 커졌다. 어떤 환자를 구할 수 있고 구할 수 없는지, 또 구해서는 안 되는지 제대로 판단하려면 손에 넣기 어려운 예지력이 필요하다.
  • 나는 결정적 순간에 환자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그저 그 순간에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많은 고통을 목격했고, 더 나쁘게도 그런 고통에 익숙해졌다. 핏속에서 익사할 듯 허우적거리면서도 그런 생활에 적응하고, 그 와중에 떠다니는 법, 수영하는 법을 배우며, 심지어는 같은 파도에 휘말리고 같은 뗏목에 매달린 간호사들이나 의사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삶을 즐기기까지 한다.
  • 만니톨
  • 가족이 숨을 거둔 환자를 보러 들어올 때 나는 외상외과 집중치료실을 빠져나왔다. 그때 문득 기억이 났다. 내 다이어트 콜라, 내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그리고 외상외과 집중치료실의 찌는 듯한 열기. 응급실에는 나를 대신해줄 레지던트가 있었기에, 나는 내가 구할 수 없었던 환자 대신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구하러 외상외과 집중치료실로 유령처럼 슬그머니 다시 들어갔다. 냉동실에 30분 정도 넣어두니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가족이 사망한 환자에게 작별인사를 건넬 때 나는 이에 낀 초콜릿 칩을 떼어내며 굉장히 맛있다고 생각했다. 의사로 지낸 짧은 시간 동안 도덕적으로 나아지기는커녕 퇴보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톨스토이가 묘사한 정형화된 이미지의 의사, 무의미한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기계적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로 변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인간적인 의미를 완전히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 어느 퇴역 군인은 몇 주 동안 공격적인 태도로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의 조언과 위로를 거부했다. 그 결과 우리가 경고했던 것처럼 그의 등에 난 상처가 더 나빠졌다. 나는 그를 수술실로 불러 벌어진 상처를 꿰맸고, 그는 고통을 못 이겨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업자득이란 없다.
  • 레지던트로서 내가 꿈꾸었던 가장 높은 이상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누구나 결국에는 죽는다), 환자나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 메스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면, 외과의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는 따뜻한 말뿐이다.
  • 심각한 뇌 손상으로 인한 독특한 고통은 때로는 환자보다 가족에게 더 큰 아픔을 준다. 그래서 그 의미를 완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건 의사뿐만이 아니다. 뇌를 다쳐 머리를 깎고 누워 있는 사랑하는 이의 주변에 모인 가족들 역시 그 의미를 완전히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과거를 본다. 그동안 쌓아온 추억, 새삼 느껴지는 사랑의 감정, 이 모든 것을 그들 앞에 놓인 몸이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들이닥칠 미래를 본다. 외과 수술로 목에 뚫은 구멍을 통해 연결된 호흡보조기, 복부에 낸 구멍으로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투명한 액체, 장기간 지속되는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과 불완전한 회복. 때로는 환자가 사람들이 기억하는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순간 나는 대부분의 경우 죽음에 맞서 싸우는 전사가 아닌 죽음의 전령사 역할을 했다. 가족들에게 그들이 기억하는 사람(온전하고 생기가 넘치는 독립적인 사람)은 이미 과거의 사람이고, 환자가 어떤 미래를 원할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들이 가진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했다. 편안한 죽음을 원할까, 아니면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액체가 들어가고 나오는 여러 주머니들과 끈을 매달고 연명하는 삶을 원할까.
  • 심장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이던 한 부인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배고프세요? 드시고 싶으신 건 있어요?” “뭐라도 먹고 싶어요. 배가 등에 붙겠어요.” “자, 그럼 랍스터와 스테이크는 어떠신가요?” 아버지는 간호사실에 전화를 걸었다. “환자분께서 랍스터와 스테이크를 드시고 싶다는군요. 지금 당장이요!” 아버지는 전화를 끊고 다시 부인을 바라보고 미소를 띠며 말했다. “곧 올 겁니다. 하지만 음식이 칠면조 샌드위치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건 미리 알아두세요.”
  • 재앙(disaster)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부서지는 별을 의미
  • “네. 뇌졸중이 아닙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가 지난주까지 살아왔던 삶과 앞으로 살게 될 삶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을 것이었다. 이 부부는 뇌암이라는 말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 커다란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 한 번에 그릇을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 병명을 들으면 대부분의 환자는 침묵을 지킨다. (patient라는 단어의 초기 뜻 중 하나는 ‘불평 없이 곤경을 견디는 자’이다.)
  • 곧바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간혹 있다(대개는 환자 본인보다 배우자). “우리는 싸워서 이겨낼 거예요, 선생님.” 그들은 기도에서부터 재산, 약초, 줄기세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에 기댄다. 내 눈에는 그런 강인함이 절망에 맞서기 위한 불안정하고 비현실적인 낙관주의처럼 보인다.
  • 교회의 제단 뒤에서 거대한 진실을 모두 폭로할 필요는 없다. 교회 본당 앞의 널따란 홀이든 신도석이든 환자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 최대한 멀리 데려가는 게 중요하다.
  • 나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수술에 성공하려는 헌신적인 노력에는 큰 대가가 따랐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실패는 참기 힘든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이런 부담감은 의학을 신성하면서 동시에 불가능한 영역으로 만든다. 의사는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지려다가 때로는 그 무게를 못 이겨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 “오늘은 이 모든 게 가치 있어 보이는 첫날이야. 아니,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아이들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견뎌내며 여기까지 왔는데, 오늘은 그 모든 고통이 가치 있어 보이는 최초의 날이야.”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 하이데거의 말처럼 지루함이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는 것이라면
  • 브로카 영역
  • 베르니케 영역
  • 생물학, 도덕, 삶, 그리고 죽음의 개별적인 가닥들이 마침내 서로 엮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완벽한 도덕 체계는 아니더라도 일관성 있는 세계관이 잡히고 그 안에 내 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 우리 둘 다 정신없이 바빠서 연락을 하지 못했다. 나는 제프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떠올리려고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 야고보
  • 우리 환자의 삶과 정체성은 우리 손에 달렸을지 몰라도, 늘 승리하는 건 죽음이다. 설혹 당신이 완벽하더라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이에 대처하는 비법은 상황이 불리하여 패배가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漸近線)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 죽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동시에 삶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 내 인생의 한 장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책 전체가 끝나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사람들이 삶의 과도기를 잘 넘기도록 도와주는 목자의 자격을 반납하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이 되었다. 내 병은 삶을 변화시킨 게 아니라 산산조각 내버렸다. 형형한 빛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비춰주는 에피퍼니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 앞길에 폭탄을 떨어뜨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할 터였다.
  • 내 삶은 그동안 잠재력을 쌓아왔으나 그 잠재력은 결국 빛을 보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정말 많은 걸 계획했고, 그 계획이 곧 성사될 참이었다. 내 몸은 쇠약해졌고, 내가 꿈꿨던 미래와 나 자신의 정체성은 붕괴되었으며, 내 환자들이 대면했던 실존적 문제를 나 역시 마주하게 되었다. 폐암 진단은 확정되었다. 내가 신중하게 계획하고 힘겹게 성취한 미래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무척 익숙했던 죽음이 이제 내게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죽음과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지만, 아직 죽음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치료했던 수많은 환자들이 남긴 발자국을 보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기로에 선 내 앞에 보이는 거라곤 텅 비고, 냉혹하고, 공허하고, 하얗게 빛나는 사막뿐이었다. 마치 모래 폭풍이 그동안 친숙했던 모든 흔적을 쓸어간 것처럼.
  • 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도 자동화된 피질하 운동 시스템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하지 못하고 노력과 계획이 필요했다.
  •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이렇게 말했다. “어설프게 배우는 건 위험한 일이다. 뮤즈의 샘을 흠뻑 마시든가, 아니면 아예 입도 대지 말라.”
  • 나는 앉아서 의과 대학원 시절 루시와 함께 찍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는 춤을 추며 웃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 있자니 너무 슬펐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존재인지도 모르고 함께할 인생을 계획했다.
  • 카플란 마이어 생존 곡선
  •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 통계를 지나치게 파고드는 건 소금물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고뇌에 빠지는 일은 생존 가능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우리의 정체성은 뇌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신체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
  • 죽음의 무게가 더 가벼워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더 익숙해지기라도 할까?
  • 의사는 병에 걸리는 느낌이 어떤지 추상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진짜 아는 것이 아니다. 그건 사랑에 빠지거나 아이를 가지는 것과 비슷하다.
  • 의사는 모든 환자에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11년 동안 병원에 몸담으면서도 나는 고통의 구체적인 느낌을 전혀 알지 못했다.
  • 이것은 승리일까, 패배일까?
  • 나는 내 삶의 모든 문장에서 주어가 아닌 직접 목적어가 된 기분이었다.
  • 적어도 그녀의 진료실에서는 스스로를 열역학 제2법칙(모든 질서는 엔트로피, 쇠퇴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니라, 어엿한 인간이라고 느꼈다.
  • 생물을 규정짓는 특징은 생존을 향한 분투라는 것이다. 삶을 이와 다르게 설명하는 건 줄무늬 없는 호랑이를 그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수년을 죽음과 함께 보낸 후 나는 편안한 죽음이 반드시 최고의 죽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아기를 갖기로 한 결정을 양가에 알리고, 가족의 축복을 받았다. 우리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 새로운 삶을 위해 아이를 가지는 일에서조차 죽음은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 그 주말에 스탠퍼드 신경외과 동문 모임이 있었고, 나는 거기에 참석하면 예전의 나로 어느 정도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있어 보니 지금의 내 삶이 예전과 얼마나 다른지 더욱더 실감날 뿐이었다. 내 주변은 온통 성공, 가능성, 야심으로 가득했다. 사람을 녹초로 만드는 여덟 시간의 수술도 서서 견딜 수 있는 동료들과 선배들은 이제 나와는 다른 삶의 궤도를 따라 맹렬히 달리고 있었다. 나는 거꾸로 돌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에 갇힌 기분이었다. 동료 레지던트 빅토리아는 행운의 선물 꾸러미(연구 보조금, 일자리 제의, 의학 전문지 논문 게재)를 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나도 함께 누렸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선배들은 더는 내 것이 아닌 미래(젊은 의과학자 상 수상, 승진, 새집)를 살아가고 있었다.
  •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던 청년에게 불치병은 완벽한 선물이 아닌가?
  •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 죽음은 단 한 번 있는 일이지만,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건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다.
  • 우리는 한 번에 하루씩 살 수 있을 뿐이라는 진리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하루를 가지고 난 대체 뭘 해야 할까?
  • 그리고 마침내 나는 부정, 그것도 전면적인 부정 단계에 이르렀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오래 살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 암의 저주에 걸린 나는 다가오는 죽음을 무시하지도 거기에 매이지도 못하는 기이하고도 불편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암은 물러나 있을 때조차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 마이모니데스
  • 오슬러
  • 에마는 나의 옛 정체성을 되돌려주지는 않았다. 대신에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내 능력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 과학은 경험적이고 재현 가능한 정보를 체계화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과학의 능력은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장 중심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아름다움, 질투, 명예, 나약함, 부단한 노력, 고통, 미덕)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되 거기에 닿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혹은 가능하다 해도 확실히 입증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 인류의 지식은 한 사람 안에 담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맺는 관계와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생성되며,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궁극적인 진리는 이 모든 지식 위 어딘가에 있다.
  • 거기에 그것이 있었다. 새로운 커다란 종양이 우중엽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지평선을 막 벗어난 보름달 같은 놈이.
  • 거스트만 증후군
  • 팔에서 떨어져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비누 거품을 나는 멍하니 지켜보았다.
  • 다시 한 번 나는 의사에서 환자로, 주체에서 객체로, 주어에서 직접 목적어로 돌아왔다.
  • 대부분의 현대적 서사에서 한 인물의 운명은 그 자신과 다른 이들의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 《리어 왕》의 글로스터는 인간의 운명이 “제멋대로인 아이들 손에 맡겨진 파리” 같다고 불평하지만, 실제 그 희곡의 극적 구조를 만들어주는 건 리어 왕의 허영심이다.
  • “이게 끝은 아니에요.” 에마가 말했다. 분명 그녀는 지금껏 환자에게 천 번도 넘게 이 말을 했을 것이다. 나 역시 환자에게 비슷한 말을 했었으니까. 불가능한 답을 구하는 환자에게 의사는 늘 이렇게 말한다. “끝의 시작도 아니에요. 그냥 시작의 끝인 거예요.”
  • 큰 즐거움이었던 식사는 이제 바닷물을 마시는 일처럼 되어버렸다. 갑자기 내 모든 기쁨에 소금이 뿌려졌다.
  • 담야타
  • 결국 의사도 희망이 필요한 존재였다.
  • 앞으로 루시와 내 딸의 삶에는 많은 것들이 부재(不在)할 것이다. 내가 아내와 딸 옆에 지금처럼만 존재할 수 있다 해도 나는 담담히 받아들이겠다.
  • 내 앞에 펼쳐진 넓은 지평선에서 나는 공허한 황무지가 아니라 그보다 더 단순한 어떤 것을 보았다
  • 시간은 이제 나에게 양날의 검과도 같다.
  • 죽음은 예상보다 느리게 올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것보다는 분명 빠르게 닥쳐올 것이다.
  •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팽창한다면,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시간은 수축될까?
  • 사람들은 5년 후에 뭘 하고 있을까 늘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5년 후에 내가 뭘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죽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건강할 수도 있다.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될지는 정말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점심 식사 이후의 미래를 생각하는 건 시간 낭비다.
  • 그레이엄 그린은 인생은 첫 20년까지이고 나머지 시간은 그 20년을 회고하며 보내는 법이라고 했다.
  • 모든 사람이 유한성에 굴복한다. 이런 과거 완료 상태에 도달한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대부분의 야망은 성취되거나 버려졌다. 어느 쪽이든 그 야망은 과거의 것이다. 미래는 이제 인생의 목표를 향해 놓인 사다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는 현재가 되어버렸다. 돈, 지위, <전도서>의 설교자가 설명한 그 모든 허영이 시시해 보인다. 바람을 좇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 우리 딸 케이디. 나는 케이디가 내 얼굴을 기억할 정도까지는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목숨은 사라지겠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케이디에게 편지를 남길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대체 뭐라고 써야 할까? 케이디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지어준 별명이 딸아이 마음에 들지도 알 수 없다. 미래가 창창한 이 아이는,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한 과거만 남아 있는 나와 아주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이다.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 당신은 제게 두 가지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뜻하셨다면 만족하실 그런 사랑의 유산을. 당신은 바다처럼 광대한 고통을 남기셨습니다. 영원과 시간 사이에, 당신의 의식과 나 사이에. 에밀리 디킨슨
  • 침윤
  • 폴의 세계는 더욱 작아졌다. 가족이 아닌 손님은 돌려보내는 내게 폴은 이렇게 말했다. “만나지는 못해도 내가 사랑한다는 건 다들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그 친구들의 우정이 소중해. 그리고 아드벡
  • 한 잔 더 마신다고 해도 내 마음은 변치 않을 거야.”
  • 모르핀
  • 《숨결이 바람 될 때》는 폴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는 바람에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미완성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완성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 폴이 직면한 현실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삶의 마지막 몇 해 동안 폴은 목적의식을 잃지 않고 또 움직이는 시곗바늘에 자극받으며 쉼 없이 글을 썼다.
  • 삼십 대에 죽는 건 이제 드문 일이지만, 죽음 그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다.
  • 언제나 말하는 자이다. 그의 꿈은 어떻게든 말로 표현되며, 그는 장엄한 환희 속에 그 꿈을 널리 알린다.”
  • “나는 기쁨과 슬픔을 그대와 나누리라, 이 여정이 끝나는 걸 볼 때까지.”
  • 남편이 숨을 거두기 몇 주 전, 함께 침대에 누워서 내가 그에게 물었다. “이렇게 내가 당신 가슴에 머리를 대고 있어도 숨 쉴 수 있어?”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이게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 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 “우리는 서서히 걸음을 옮겨 영원한 산의 정상에 오르리라. 그곳의 바람은 시원하고, 풍경은 장엄하리라.”
  •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
  •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 《천로역정》에 나오는 찬송가의 가사가 생각난다. “진정한 용기를 보려는 자가 있다면 / 이리로 오게 하라 / 그러면 환상은 사라지고 / 그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여 / 순례자가 되고자 할 것이다.”
  • 페르메이르
  • 윌리엄 오슬러
  • 암에 걸린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하나는 평소에 하던 일을 집어치우고 칭병하며 아무것도 안 하는 절망적인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오히려 그 병 때문에 더욱 평소 하는 일에 몰두하는 긍정적인 태도가 그것이다.
  • 남작은 인간이 하나의 법률(정신) 아래 태어났으나, 다른 법률(육체)에 매인 존재이며, 허영 속에서 태어났으나 허영을 금지당한 존재이며, 병든 상태로 창조되었으나 건강하게 살아갈 것을 명령받은 모순적 존재라고 설파했다.
  • 그레빌 남작
  •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칼라니티 부부가 어린 딸 케이디를 안고 환히 웃는 사진이 실려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 웃고 있는 부부와는 다르게 우리는 샘솟는 눈물을 억누를 길이 없다. 부부는 왜 웃고 있겠는가? 웃지 않으면 그들이 먼저 울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