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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의 도시
시각언어의 실험이 구축한 지형도,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인 물음경계 간 글쓰기, 분과 간 학문하기, 한국 인문학의 새 지형도「하이브리드 총서」제 5권『이면의 도시』. 이 책의 저자들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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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도 알다시피, 인간이 한 직업에 종사하다 보면 그 직업이 그의 모습이 되는 거야.
- 변화 혹은 기술적인 진보는 우리에게 새로운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 같아 보였다. 인공위성, 신의 시점을 빌려 쓰는 GPS 덕분에 우리의 지리 감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타인의 고정된 시점에 의지해야 하는 제한적인 지리 경험이 이제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측정하고 재단할 수 있는 종류의 것으로 탈바꿈했다. ‘내비게이션’은 그렇게 우리의 시각에서 장소와 길을 안내해준다. 내가 시청으로부터 몇 킬로
-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청이 ‘나로부터’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반대로 언제든 나의 위치가 파악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 개인 정보들
- 정보들이 드디어 진정한 공공성을 획득하는 시대다.
- 우리가 내비게이션에서 불러내 공유하는 정보는, 한 사람의 택시 운전사라면 수십 년이 걸려야 축적 가능한 양의 정보들이 집적된 데이터베이스로부터 나온다.
- 우리의 경험이 점차 시스템이 제공하는 기성화한 포맷이 허용하는 가상의 한계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그 포맷에 의존하는 것이 일상화될 때, 개별적 경험이 평준화되고 이를 제공하는
- 시스템의 지배력이 우리의 삶을 뒤덮으리라는 것도 비약적인 추론은 아니다.
- 이런 주제는 우리들 디자이너가 연구할 만한 범주에 속하기보다 인문학적 성찰과 실천의 영역에 속하는지도 모르겠다.
- 운나얀 프로젝트
- 1970년대 인도의 급격한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도시 주변에는 지방이나 농촌 지역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의 거대한 불법적인 거주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운나얀 그룹은 이러한 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던 시점에 결성된 사회적인
- 행동 그룹으로, 인도 캘커타 동부의 빈민 주거지역을 대상으로 거주, 건강, 노동, 교육 등의 이슈에 관해서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들이 주목했던 부분은 엄청난 수의 이주민, 하층 노동자, 주거민이 그 지역에 실제로 살고 있음에도, 공식적인 지도나 자료에는 그들의 존재가 무시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통계나 공문서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을 근거 자체가 성립될 수 없었다. 운나얀 그룹은 지역 커뮤니티와의 협력을 통해서, 비공식적이던 빈
- 빈민 거주지를 지도에 표시하고 일련의 우편번호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존재에 현실적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즉 시스템 밖에 존재하던 이들에게 시스템 안으로 편입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어 국가에 속한 개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와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게 했다.
- CCTV와 같은 실시간 감시, 기록의 도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국가의 시민 지배를 나타내는 억압의 대표적인 상징이었다. 그러나 근년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이 CCTV는 사람들이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증식되며 도시 공간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에 의해 강력하게 저지되거나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이 기기는 이제 범죄를 예방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기
- 기초적인 수단으로 받아들여지며 도시 생활의 가장 일상적인 요소로 안착했다.
- 감시하는 조직으로서 시스템은 항상 개인에 비해 우월한 자리에 서있지만, ‘맨해튼 감시카메라 지도’ 프로젝트의 경우는 역으로 감시하는 눈을 관찰하
- 관찰하는 작업을 통해 개인과 시스템 간의 아이러니컬한 관계를 재미있게 드러내고 있다. 이 지도는 맨해튼의 모든 CCTV의 위치를 기록해서 보여줌으로써 CCTV의 증식에 대한 주의를 일으키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맨해튼의 주민들의 참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시민들이 수량이나 개별적 위치, 그리고 설치하고 기록하는 주체가 공표되지 않는 CCTV의 위치를 PDA, 카메라폰, 종이에 펜으로 스케치한 메모 등을 통해 제보하고 그 총합을 기록하면 프로젝트
- 실무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감시카메라 분포도를 작성했다. 이 작업을 통해 한 구역에 얼마나 많은 감시카메라가 분산・설치되어 있는가에 대한 공적인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었다.
- 등사판
- 분포도에서 그들이 한 좌표에 위치하는 순간, 그와 다른 지식인과의 상대적인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 의심 많은 사람이란, 무엇이든 믿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한꺼번에 믿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사람은 근시안적이고 방법론적이어서 거시안적이기를 기피한다. 이런 사람은 의심이 풀려야 사물을 믿고, 첫 번째 사물과 똑같아야 두 번째 사물을 믿는다. 이 두 가지가 똑같지 않으면 좀체 믿으려 들지 않는다. 이 두 사물 어딘가에, 이 두 사물을 연결시키는 제3의
- 함정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게 바로 경신輕信이다.
- 영향력의 크기로 따졌을 때 지식인들의 경우는 별것 아닐 수도 있다. 실제 세상이 돌아가는 일들에 정말 의미 있는 영향력을 갖는 인물들은 누구며, 정체는 무엇일까.
- 간혹 어떤 사건들을 통해 그 공고한 침묵과 비가시의 보호막은 균열을 일으켜, 우리의 시야에 그 구성원이나 실체의 일부가 노출되기도 한다. 보통은 이를 현실이라고 인식하며 적당한 선에서 분노 섞인 탄식 정도를 남길 뿐이지만, 어떤 이들은 제한적으로 드러난 사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실체를 개인 차원에서 뒤쫓아 규명하려는, 지난하고 좀처럼 성과 없는 시도와 좌절의 늪에 스스로를 빠뜨리고 만다.
- 마크 롬바르디Mark Lombardi
- 기업들이 자본주의의 완전한 경쟁 시스템 하에서 무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는 표면적인 사실들과는 달리, 각 기업의 고위 간부급 인사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살펴보면 이들이 마치 큰 가문에서 뿌리내린 후손들처럼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경쟁 구조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국가의 개입과 외부의 제재를 극
- 극단적으로 경원시하는 기업들이 만든 제품들이 어째서 항상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이 오르는지, 각 기업들 간의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가 어째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일이 드문지,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 픽토그램
- 지금의 서울은 운전사의 경험에만 기대기에는 변화의 양상이 너무나 역동적이어서, 오히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기대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 혼란스럽게 편재하는 장소와 정보의 가닥들을 더듬거리며 엮어,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거나 그 자체만으로는 구체적 의미를 갖기 어려운 이야기의 조각조각을, 정보의 잔
- 잔재들을 다양한 맥락으로 살피고 재현하며 우리의 일상에 암묵적으로 관계하는 것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도심의 저변을 관통하는 거대한 지하 공간의 스케치일 수도 있고, 순간순간 공공 공간들을 은근슬쩍 사적인 용도로 전유하는 시민들의 얄미운 재치일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하게 수도권을 재구성하는 교통 시스템일 수도 있다.
- 2002년의 이미지들과 유사하지만 색다른
- 필터를 적용해 변조시킨 느낌과 같았다.
- 광화문 일
- 일대는 광장이 아니라 넓은 도로(왕복 16차선)였고, 시청 앞 광장도 시청 건물에 부수적으로 딸린 잔디밭이었지만 2002년, 2008년 시민들의 움직임으로 그곳들은 이른바 소통의 공간, 혹은 의견 표출의 공간으로서의 광장의 의미를 다시 획득하는 것처럼 보였다.
- 19세기 파리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샹젤리제 거리라고 부르는 그 거대한 회랑이 조성된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
- 오래지 않은 일이다. 현대 도시 계획의 원형으로 회자되는 오스망Georges Eugène Haussmann의 네오 파리 건설 과정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왕정, 귀족정과 대적해 싸운 민중의 힘에 기대어 대통령에 오른 루이 나폴레옹Charles Louis Bonaparte이 몇 해 지나지 않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제를 폐지하고, 스스로 황제(나폴레옹 3세)에 등극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도시 계획은 그를 지지했던 민중 투쟁의 근거를 제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프랑스 민중들이 2월 혁명 당시 정부군과 시
- 시가전을 벌이면서 승리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구舊 파리의 좁은 골목들을 활용해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이를 근거로 시가전을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나폴레옹 3세는 오스망에게 네오 파리 계획을 지시하면서 이 같은 도시 민중 투쟁 전술에 대한 방비책을 요구했고, 오스망은 폭동 진압군이 신속하게 이동해 군중을 제어하기 쉽도록 도로를 직선화하고 그 폭을 넓혔다. 그 결과가 지금의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펼쳐진 샹젤리제 거리다.
- 군사력의 압도적인 우위를 가졌던 19세기 파리에서는 시가전을 조망하며 민중을 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넓은 공간이 제안되었다면 서울에서는 대규모 군중의 성립 요건을 상쇄시키기 위해서 공간을 자르고 분절시키는 쪽이었다. 공간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함과 동시에 상시적 이벤트를 시청 앞에서 개최하고, 시장 오세훈의 핵심 시정 프로젝트 중의 하나인 공공디자인 사업의 연장선상으로 광화문 16차선을 각종
- 조형물로 가득 채웠다. 각종 시설물들이 가득 찬 곳에서 구심점은 분산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서울시가 빠르게 공공 공간들을 다양한 전략으로 점유한 이유가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공공 공간들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청와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과장한 것일까? 실제로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이다.
- 런던의 하이드 파크에는 조그마한, 높이가 2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한 박스가 있다. 얼기설기 놓여 있는 박스는 얼핏 보아서는 그
- 용도를 짐작하기 어렵다. 정오 즈음이 되면 그 용도에 대한 의문은 풀린다. 그곳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유명한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다. 1872년 이래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형성된 이 자리는 지금까지 개개인의 연설—혹은 주장—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영국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장소다.
- 옥외 집회 및 시위의 금지 장소에 관한 법률 제11조
- 같은 법률에서는 2인 이상이 한 가지 주제로 한 장소에 모여 발언하는 것을 시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혼자서 피켓을 들고 있거나 구호를 외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시위가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공관 근처에서 누군가가 홀로 시위하는 모습에 익숙해지게 된 것이다.
- 이와 같은 형태의 시위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며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2000년 12월 18일, 참여연대가 삼성그룹의 상속세 추징을 요구하며 국세청 앞에서 79일 동안 벌인 시위였다. 1인 시위는 대규모 시위가 가진 폭력적인 인상에서 벗어나 있고, 법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참신하게 받아들여졌다. 1인 시위가 유용한 발언의 수단으로 널리 여겨지면서, 집시법의 틈새에 놓여 있다는 장점을 이용해 동일한 주제로 여러 사람이 돌아가
- 돌아가며 하는 릴레이 시위, 간격을 두고 동일한 주제로 하는 인간띠 시위 등의 변형태들도 등장했다.
- 이 공간들은, 공권력의 근엄한 권위를 위해 시위를 금지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시위로 기능하는 행위가 가능하고, 또 가장 빈번하게 실행되는, 법률 아래서 의미와 기능이 꼬여버린 흥미로운 공간으로 전이되었다. 애초에 시위를 규정한 사람들의 방어적 관점이 반영된 결과다.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보장하기보다는 그로부터 공권력을 보호하거나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
- 법률이 의도치 않게 괴상한 틈새를 만든 셈이다.
- 빈 본회의장 앞에 붙은 배치도의 이름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초등학교 시절 좋아하던 옆 반 아이의 자리를 확인하려고 빈 교실에 숨어들어 자리배치도에 반듯하게 쓰인 그 아이의 이름을 확인하고 두근거렸던 추억이 떠오른다.
- 아마도 나는 뉴스와 신문 따위로만 접하여 이미지와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금배지’들을 실재의 세계에서 조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의석배치도는 그들을 내가 인지할 수 있는 현실 세계의 범위로 끌어내리는 통로와도 같았다. ‘국민의 종복’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으면서, 한 지역의 수많은 유권자들의 권리를 위임받아 그들 대신 나랏일을 처리하는 높으신 분들이, 이 배치도 안에서는 그저 하나의 좌표값을 가지고 다른 의원들과 함께 줄지어 앉아 있는
- 그저 한 사람의 이름일 뿐이다. 나는 이제 이들이 어느 자리에 앉아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 호승심
- 돔이 없는 국회의사당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최초 설계 때부터 존재하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로마 판테온의 돔을 모델로 만들어진 미국의 국회의사당The U.S. Capital을 보고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도 그런 위엄이 있어야 된다고 믿었던 당시 국회의원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서 급히
- 디자인이 변경된 것이다.
- 2002년의 모습은 단지 학습된 국가주의에 의해 충동된 국가 대표팀에 대한 열광에서 비롯된
- 것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2008년 또한 그 자각이 단지 먹거리의 위협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광장’의 의미와 기능을 복원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곰곰이 되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설령 지금 우리에게 그때의 광장은 사라져버리고 없다고 해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자각하는 순간, 광장은 어디에나 생겨날 것이다.
-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세계는 죽은 자들의 땅이다. 죽은 자의 영혼은 헤르메스의 인도에 의해 아케론 강이 코키터스 강으로 흘러드는 지하세계의 입구로 가게 되고 거기서 지하세계의 뱃사공인 카론의 배를 타고 지하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rica
- 그러던 땅 밑으로 이제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매일의 일상을 오가고, 모자라는 개발 공간의 압박을 피해 더욱더 깊이 파 들어가고 있다. 서울의 지하 공간, 따로 떼어놓아도 도시라고 부를 수 있을 만
- 만한 공간들이 집합된 총체로서의 ‘언더월드Underworld’는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제 피할 수 없는, 오히려 즐겨야 할 공간이다.
- 2005년 4월 중순, 여의도 버스 환승 센터 건설 현장의 사람들은 오래된 녹색 철문
- 그 철문 너머에는 두 개의 화장실과 대형 대피실, 세 개의 비상용 탈
- 탈출구, 그리고 고급 소파가 놓여 있는 180평 크기의 음습한 콘크리트 지하 벙커가 있었다.
- 벙커는 결국 1976년경에 청와대 경호실에 의해서 만들어진 비밀 벙커였음이 잠정적으로 밝혀졌다.
-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서울시 장기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여의도에 들어선 5・16 광장은 그 이름에 걸맞게 국군의 날 퍼레이드 장소로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도 ‘국풍 81’, ‘이산가족찾기’, ‘빌리 그레이엄 목사 전도대회’ 등 한국적 이벤트가 장대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실제로 12만 평(396,694m2)이나 되는 이 아스팔트 광장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급박해지는 안보 정세 속에서 이 공간은 ‘서울시 요새화 계획’의 일부로 비상시의 군 비행장으
- 비행장으로서 기능했다. 그 끝부분에서 발견된 이 지하 벙커는 비상시의 대피소이자 비행장 이용을 위한 대기 공간으로 설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1969년 ‘원조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 ‘서울시 요새화 계획’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 계획의 일환으로 다양한 군사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지금은 철거되었지만 한국방송이 1976년 당시 문화공보부의 ‘충
- ‘충무’ 계획에 따라 창덕궁, 선릉, 서오릉, 영휘원 등에 만들었던 방송용 벙커도 그중의 일부다.
- 2008년에는 불탄 숭례문의 복구 과정에서도 지하 벙커가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대통령의 별장인 청남대의 지하 벙커가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 이렇게 하나둘씩 발견되는 우리나라 근대적 지하 공간들은 공통적으로 지
- 지상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숨어드는 공간이었다.
- 이제는 많은 이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지만, 서울 도심의 모든 지하 공간의 출입구에는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대피소’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
- 있다. 모든 지하철역의 출입구와 지하보도, 지하상가 들에 빠짐없이 붙어 있는 이 표지판은, 이 공간들이 어떤 목적으로 처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목적을 얼마나 완전히 잊고 사는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 시청 광장을 지나다 보면 지하상가로 내려가는 입구가 있다. 이것이 장장
- 3.3킬로미터에 이르는 서울시 최장 지하 공간의 시작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시청을 시작점으로 을지로를 횡으로 잇는 이 지하 공간은 1960년대 서울시의 지하 공간 개발에 따라서 조성되기 시작했다. 지하상가가 처음으로 선을 보인 것은 1967년으로 시청 앞 새서울 지하상가가 그 시초다. 그 후 1974년 지하철 1호선의 개통을 계기로 유동 인구의 유입과 함께 본격적으로 지하상가 시대가 열렸다. 이 지하상가를 비롯한 지하 공간들이 본격적으로 냉전에 발맞추어 변모하기 시작
-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 구자춘 서울시장과 대현실업의 신현수의 만남에서부터였다. 신현수는 구 시장에게 도심 한가운데 지하상가를 개발하면서 민간 전시 대피시설의 필요성도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는 구 시장의 지지와 승인을 이끌어냈고 그때부터 대현실업은 1970~1980년대 군사정권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서울 전역의 대표적인 도심 거점에 지하 공간을 개발하고 그 공간을 상가로 분양하기 시작했다. 이 지하상가들은 강북에서 강남으로 경제 주도권이 넘어가기
- 시작한 199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에서 가장 활발한 상권에 속했고, 전성기를 누렸다.
- 언제부턴가 지하 공간은 이런 격리된 공간, 공리주의적 무성 공간의 전형이 아니라 가장 고도화한 상업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 아침 출근 시간은 하루 중 내가 유일
- 유일하게 신선한 바깥 공기를 맡을 수 있는 시간이다.
- ‘미로’의 조건 중 하나는 외부와 완벽히 차단되어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은 그 미로를 헤매는 이의 방향성을 상실케 하거나, 외부 세계로부터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다는 두려움을 주기 마련이다. 이런 조건은 우리가 하루의 일부 혹은 대부분을 머무는 지하 공간에도 해당된다. 크노소스 미궁을 헤매는 테세우스처럼 우리는 지하 공간의 광고판이나 이정표가 이끄는 대로만 걸으며 스스로의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다. 고립의 두려움은 지하철 운전사들
- 운전사들이 외부와 차단되어 끝없는 검은 터널을 운전하는 순례에 지쳐 정서 불안을 호소한다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기관사들이 일반인에 비해 공황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등의 정신장애에 시달리는 비율이 몇 배나 높다는 사실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이런 트라우마와 맞물려, 탈출할 길 없는 공포감이 지하 공간을 오가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외부의 적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지하 공간이 이제는 내부의 적에게서 야기되는 위기와 재난에 무력한 공포의 공간으로 돌변한 것이다. 이제 지하 공간은 내・외부적 공포를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 집적된 자본의 공간은 쇠락한 지하 공간이 주는 음산함과 심리적 불안감을 대체할 확신을 우리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코엑스로 대표되는 이 지하 대형 쇼핑몰의 공간적 거대함과 세심하게 짜인 동선과 안도감을 주는 거대한 랜드마크, 휘황찬란한 조명, 각종 사인과 광고 장치, 화려한 인테리어는 지하 공간이 주는 밀폐감을 압도하고 희석시킨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 코엑스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해 계속 길을 잃긴 하지만, 길을 잃을 정도로 거대한 공간을 건설할 기술력이라면 안전함도 보증되지 않겠는가.
- 지상에 있건 지하에 있건 관계없이 그들만의 공간적 아이덴티티로 모든 시각적 · 공간적 환경을 휘감고 고밀도로 채워버린다. 이제 우리는 긴장을 풀고 이 미래적인 공간이 제공하는 즐거움에 몸과 마음을
- 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무인양품
- 1988년 롯데백화점 잠실점이 개장한 이래 1989년 롯데월드, 1998년 롯데마트, 2005년 롯데골든캐슬까지, 롯데는 잠실 일대를 완전히 롯데 계열의 자본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 결절점
- 지하상가들의 몰락은 이들의 영역 확장과 관련이 크다. 예전처럼 백화점과 지하상가가 소비자층을 각각 나눠 점유하지 않는다. 유동 인구가 움직이는 통로의 선점은 그 어느 때보다 이들 거대 상업자본의 중요한 이슈가 되었
-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동 인구의 결절점에서 거대 자본은 서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다
- 상업자본들의 움직임은 그들이 오래전부터 다양한 속도가 교차하는 플랫폼으로 도시를 파악하고 이것이 곧 자본의 흐름과 일치함을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자본의 결절지점에 총체적인 소비의 연동을 불러일으키는 공간과 지역의 브랜딩 전략이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먹고, 자고, 입고, 놀
- 놀고, 이동하는 모든 순간, 모든 환경, 모든 문화가 롯데왕국 안에서 순환적으로 이뤄지며 소비되는, 자본이 우리의 삶을 온전히 지배하는 신화가 이렇게 형성되고 있다.
- 타블로 사건을 보면서 누군가는 지난 2006년 언론이 열광스레 조명했던 모 큐레이터의 학력 조작 사건을 떠올리며 학벌지상주의에 혐의를 돌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 큐레이터의 경우 그가 자신의 직분을 수행하는 데에서 학력은 어쩌면 필수적인 조건이었던 데 반해, 타블로의 대중음악가 또는 연예인으로서의 순수한 자질에 학력은 가장 핵심적인 요건이 아니다. 그가 연예계에 데뷔하기 위한 첫 발판으로서 자의건 타의건 그런 눈부신 학력을 이
- 이용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지만, 이후의 활동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그가 지금의 위치에 서 있기는 불가능했으리라 말할 수도 있다. 그가 만약 실제로 학력을 위조했다면 조롱거리가 되거나 비난받아 마땅하겠지만, 끔찍할 정도로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인 촌극쯤으로 여기거나 가짜 페르소나를 둘러쓴 대담하고 영악한 쇼맨십으로 칭송해줄 용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타블로의 실체보다는 이 같은 이벤트가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 그 자체다.
- 대한민국 국민은 처음 태어나 동사무소에서 출생신고서를 작성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발급받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국가에 신고한다. 그리고 대개 10대 후반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는다. 발급통지서를 받고 동사무소에 들러, 가장 깔끔하고 단정하게 찍은 증명사진을 내밀고, 스탬프 잉크를 열 손가락에 골고루 묻혀 서류에 찍는다. ‘성인이 되었음’을 국가가 공적으로 인증해주는 이 성인식은, 채 스물이 안 된 소년들의 마음속에 뿌듯함과 동시에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국민으로서의
- 의무감과 사명감을 지운다. 이처럼 존재의 시작을 국가에 의해 강제된 신고와 함께하는 한국인들은, 신상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익숙하고 누군가의 신상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뒤지거나 요구하는 데도 익숙하다.
- CODISCombined DNA Index System
- CCTV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기기라기보다 모든 사람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장치다. 또한 가장 강력한 평등 의식을 가진 나라의 국민답게 나 하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같은 시선의 대상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인지 뚜렷한 불만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CCTV를 통해 사람들을 바
- 바라보는 것은, 지문을 수집하고 신분증을 발행하는 국가의 시선과 동일하다. 잘 만들어진 전자정부 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의 주민번호를 입력하면 수백 종류에 달하는 공문서를 컴퓨터 단말기 상에서 얻거나 열람할 수 있다. 대부분의 문서들이 이미 주민등록번호 등의 필수적인 개인 정보를 담고 있거나 혹은 그 정보를 반드시 제출하라 요구한다. 공공기관뿐인가. 여느 웹사이트에 가입할 때도, 심지어 지하철 한쪽에 놓인 민원발급기도 엄지손가락의 지문을 버젓이 요구한다. 그러나 대한
- 대한민국 국민 어느 누구도, 아무렇지 않게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결국 미국 명문대를 졸업한 캐나다 국적자가 거듭되는 네티즌들의 신분 증명 요구에 지쳐 내놓은 증명들이 그들의 성에 차지 않았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 주민등록등본과 등기부등본이 개인의 거주지와 기본적인 신상 정보 등을 국가나 공권력 또는 권력을 가진
- 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면, 이 사이버스페이스는 대한민국 곳곳의 누구나뿐 아니라 국경 너머의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도 접근을 허락한다. 또 등본에 쓰인 개인 정보는 통지서에 의해 강제된 것이지만, 따뜻하고 정감 있게 디자인된 가상공간에 놓인 정보들은 사람들이 기꺼이 전시한 것들이다.
- 오직 그녀가 올린 짤막한 글과 사진을 보면서 그녀를 평가하며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녀가 생활비가 모자라 하루
- 두 끼도 챙겨 먹기 힘들다거나, 영어 실력이 모자라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고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워 외로움을 느낀다거나 하는 비루함까지는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녀도 그 비루함을 자신의 공간에 전시할 생각은 없다. 그들에게, 그리고 그녀 자신에게도 그녀는 ‘뉴욕에서 공부하는 미모의 유학생’일 뿐이다. 가상공간에서 내려지는 이런 종류의 평가들은 어떤 순간에는 공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 소장이 오고 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그 정보를 통해 타인을 평가하는 데서 더 나아가 개인의 정체성과 존재를 정의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인터넷 실명제는 아무런 개선책이 되지 못한다. 가상공간
- 가상공간에 실명보다 더 중요한 개인의 관계와 생활이 까발려져 있다. 이 평가들은 개인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일종의 공적 가치까지 획득한다.
- 평범하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개인이 누군가의 잣대로 평가받고 재단당하는 상황에 끊임없이 직면한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가상공간과 이를 매개로 한 새로운 관계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타인에 의해 재단된 정체성은 얼마든지 나 자신이 개입해 그것을 뒤틀 수도, 실제 나와 비슷한 자리에 가져다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상공간 속에 산재한, 나도 잘 모르는 나에 대한 정보들은 이
- 이상하게 재조합되어 운이 좋으면 정말 ‘나’가 되고, 운이 나쁘면 나도 잘 모르는 ‘나’가 된다. 그 정보들은 삭제하려고 해도 삭제되지 않고 ‘나는 너’라고 주장한다. 그건 나의 참모습이 아니라는 말은 공허하게 가상공간을 떠돌다 표류하고 만다. 나도 모르는 ‘나’는 네티즌들의 화면을 떠돌다 마침내 공적인 것이 된다. 나도 모르는 ‘나’가 권력자의 손에 들어가면 주민등록번호과 등기부등본처럼 나를 알려주는 정보가 되어 문서화되고 코드화된다. 안타깝게도 이 코드는 등기부등본에 잘못 적
- 적힌 주소처럼 민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 코드는 너무 많은 증거와 증인을 가지고 있다.
- 마이너스 통장
- 교육과 대출은 고도 성장기에 도시민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기회이자 혜택이었다.
- 가족의 대출 역사에 대해 물었을 때, 대출의 역사가 자신의 인생, 그리고 가족의 역사와 같다고 한 것도 어머니였다.
- 35년간 유지되어오던 이자제한법이 1998년 폐기된 후 대부업체들의 각 매체 광고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부터다. 2006년 영화배우 최민식이 대부업체인 리드코프 TV 광고에 출연하면서 대출 광고에 대한 반감은 최고조에 달했고, 결국 2007년에는 IMF 때 폐기되었던 이자제한법이 부활했다. 대부업체 광고가
- 이자제한법이 부활했다.
- 이제 주변 사람에게 쌓은 신용으로 돈을 융통하거나 아파트나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는 일은, 은행과 제2금융권 그리고 소비자 금융, 대부업체가 짜놓은 회로상에서 신용평가회사에서 제공하는 개인 신용 정보를 매개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일로 대체되었다.
- 결국 1996년 4조 원대의 대부업 대출 규모가 2005년에만 40조 원대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그만큼 1, 2금융권에서 대출받는 일이 어려워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 노이즈처럼 일상 속에 고착화되어 사람들을 거슬리게 하거나 유혹하는 대출 광고들은 그런 현실이 표면에 드러난 것에 가깝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거슬리는 노이즈로서의 광고들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경제적 주체성이 한번 기록되기 시작하면 계
- 계속해서 중첩되어 끝없이 따라다니는 이 신용 기록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 이제 개별적인 경제적 주체로서의 개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신용의 문제는 사람들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신용 점수를 관리하는 데로 초점이 옮겨갔다. 계좌를 하나 개설하거나 신용카드를 발급받거나 대출 상담을 받거나 하는 등의 대부분의 경제적 행위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신용 점수를 잃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자기 검열 아래서 실행될 수밖에 없다. 신용 평가의 밑바닥에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신용 평가 시스템이 개인의 정체성
- 정체성을 결정하거나 삶의 근본적인 부분들에 절대적인 권위로 작용하는 등의 영향력에 비해, 우리가 이 시스템의 구조와 작동 논리에 동의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 시스템이 1990년대까지의 시중 은행들의 부실을 막기 위해 도입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상적인 은행 대출은 극단적으로 제한적인데 국가가 밑바닥 사채의 살인적인 이율까지 보장해주는 상황에서 모든 금융업체가 개인들의 신용 정보를 공유하며 쥐고 흔드는 이 시스템을
- 우리가 동의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 최신 광고 기술은 항상 포르노 사이트가 제일 먼저 도입한다
- 포주와 학대받는 매춘 여성에 관한 기사보다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벽 건너편이라든가 매일 출근하는 건물 지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기사들이 오히려 더 성매매 비지니스가 예전보다 지금 더 일상 속에 파고들어 와 있음을 반증한다.
- 어쨌든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있었고, 조금씩 모습
- 모습을 바꿔가며 제 나름대로의 생명력을 유지해갈 방법을 찾아냈다.
- 그들이 언제부터 우리의 전화번호와 메일 주소를 필요로 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기를 기다리기보다 좀 더 적극적이고 좀 더 평범한 방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쿨하게 우리를 불러내는 것이 더 나은 공생법이라고 여기게 되었던 것 같다. 아마 우리는 여전히 그 ‘제안’을 나와 내 가족과는 관계없는 일이라 여기거나, 혹은 그런 척이라도 하며 기묘한 공생관계를
-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공생인지 기만인지는 알 수 없지만.
- 거대한 곡선의 콘크리트 덩어리는 변신로봇의 변신 전 모습 같다.
- 이런 방식으로 무뎌진 감각이 어떻
- 어떻게든 균형을 찾는 지점은, 불가항력적인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순간들, 이를테면 재해나 재난을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들이다. 신뢰하던 시스템이 파괴적인 재난 상황에 제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실질적인 위협이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들이닥치는 때가 되어서야 인간은 시스템에 맡겨두었던, 위험 회피와 생존에 대한 본능을 되살려낸다.
- 우리가 쉽게 가지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도구들이
- 우리에게 주어지자마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개별적인 시민 한 명 한 명이 연대해 생존을 위한 정보들을 서로 공유해야 하는 상황들이 우리에게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 같은 시도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시작되고 이루어진 것은 소셜 네트워크가 종래의 여론의 장에 비해 정치적 경계를 설정하기 어렵고, 자신을 중심으로 구성된 네트
- 네트워크가 타인의 네트워크와 부분적으로 교차되면서도 위상을 형성하지 않아 통념상의 정치적인 스펙트럼에서 자신의 위치를 실감하거나 타인에게 확인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 디자이너들은 가치 판단을 거세한 채 객관적인 정보의 중개자로 머물러야 한다는 전통적인 디자이너상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는 데 공통의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 1950 1950년 각 시 · 도민증을 발급하였다. 시민증이나 도민증은 지금의 주민등록증과 비교해보면 재미있는 점이 많다. 본적, 출생지, 주소는 물론 직업, 신장, 체중, 특징, 언어, 혈액형 등까지 적게 돼 있어 그야말로 신상명세서나 다름없었다.
- 1962 1962년 1월 기류법을 제정하여 주민등록 신고를 하도록 하였고, 1962년 5월 주민등록증법을 제정하여 시 · 도민증 제도를 수용하였다. 주민등록법이 개정되면서 1968년 10월 20일 주민등록증이 처음 생겼는데 지금처럼 가로 형태가 아니라 세로로 길게 늘어진
- 모양이었다. 주민등록번호 앞 일련번호로 생년월일을 쓰게 된 시기는 1975년 개정부터였고, 이때는 앞부분 여섯 자리가 시 · 구 · 동을 의미했다.
- 1975 1975년엔 앞으로 닥칠 정보화 시대를 예견하고 주민등록번호의 앞 일련번호를 각 개인
- 개인의 생년월일로 쓰기 시작했으며, 바탕색이 변화를 갖는 등 ‘과도기’를 맞게 된다. 그해 7월 25일 주민등록법이 개정된 이유는, 총력적인 안보태세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주민등록을 거주 사실과 일치시키고 주민등록증 발급 대상자 연령을 민방위대 및 전시 동원 대상자 연령과 일치시키고자 18세에서 17세로 낮췄다.
- 1983 종전엔 본적이나 호주가 변경된 경우 매번 재발급 받아야 했으나, 1983년 10월부터는 뒷면에 변경 내용만 바꿔 기재할 수 있도록 하고 도안을 변경하여 2차 주민등록증 일제경신이 이루어졌다.
- 1999 ~ 현재
-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은 새천년을 목전에 둔 1999년 9월에 탄생했다. 홀로그램 등의 첨단기술로 제작되어 위변조가 어렵게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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