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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Books 2020. 10. 15. 23:57

    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844194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장르를 넘나드는 스토리텔러 박연선 작가의 흥미진진 미스터리!드라마《연애시대》의 작가 박연선의 첫 장편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첩첩산중 적막강산 아홉모랑이 마을 두왕리를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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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가 똥꾸녕을 쳐들 때까지 자빠졌구먼.” 오해할까 봐 말해두는데 아직 9시도 안 됐다. 12시쯤 이런 말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 “아직도 자냐? 등짝이 장판에 눌러붙겄다!” 팔십 노인네는 초저녁잠이 깨잠이고 스물한 살 꽃처녀는 아침잠이 꿀잠이라고, 당신이 9시가 되자마자 곯아떨어질 때 내가 벌써 자냐고 딴지 걸었나? 찍소리도 안 했다. 깊은 잠 주무시라고 텔레비전 볼륨도 줄여줬다. 근데 나한테 왜 이러냐고, 진짜. 라이프스타일의 다양성에 대해 말해봤자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소리 같다.
    • “그게 다 안 먹어서 그런 거여. 새 모이만큼 먹으니 힘이 난다니?” 할머니 지가 아주 의사다.
    • 내 몸뚱아리의 유전자 4분의 1을 저 홍간난 여사에게 물려받았다 하더라도, 정서적 거리감은 백만 광년인 여든 살 시골 노파와 스물한 살 도시 처녀가 시한부 동거를 하게 됐으니……. 아니다. 동거 따위가 아니라 유배다.
    • 아는 사람은 안다. 9시 뉴스 전에 하는 일일드라마가 있다. 사랑하는 여자가 알고 보니 의붓엄마의 숨겨놓은 딸이고, 그 여자의 입양된 남동생은 알고 보니 어렸을 때 잃어버린 친동생이었다는. 알고 보면 기함할 일투성이에다 알고 볼 일이 너무 많은 드라마. 어쨌거나 주인공네 회사가 나쁜 놈에게 속아 도산 위기에 처했더란다. 여자주인공 아빠가 뒷목 잡고 쓰러지는데, 그때 충청남도 운산군 산내면 두왕리의 열혈 시청자 강두용 옹께서도 같이 쓰러지셨다. 내비게이션에도 안 나오는 첩첩산중 산골짝에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 심장은 멈춰 있었다고 한다. 향년 83세.
    • 큰고모는 밥 한 공기를 추가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나중에 큰고모 강민자 씨께서 자서전 같은 걸 쓰게 되면 이렇게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산에 묻고 돌아온 날 저녁,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습니다’ 말하다 보니, 우리 큰고모가 엄청 불효자식처럼 보이는데, 장례식 내내 제일 서럽게 운 게 큰고모였다.
    • 재차 와하하하, 큰고모는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역시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강민자 씨께서 자서전을 쓴다면 ‘아버지를 산에 묻고 돌아온 날 우리는 박장대소했습니다’라고 추가해야 할지도.
    • 삼거리로 말하자면 두왕리 최고의 번화가로, 한 시간에 한 대 납셔주시는 그야말로 귀하신 버스의 정거장이 있는 곳이다. 삼거리 세 모퉁이에는 각각 마을회관, 대문 없는 파란지붕집, 그리고 절대 부흥할 것 같지 않은 부흥슈퍼가 있다.
    • 집 없는 달팽이가 침을 질질 흘리며 기어간다. 제 딴에는 필사의 도주겠지.
    • “할머니가 걱정돼서 남았구먼.” 혼자 수긍한다. 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런 걸로 해두지, 뭐.
    • “할머니는 어떠시냐?” 그렇게 걱정되면 자기들이 내려와 있든가. “삼시 끼니는 잘 챙겨 드시고?” 할아버지 산에 묻고 돌아온 날 저녁, 고봉밥 드시는 거 다 같이 봤잖아요. “잠은 잘 주무시고?” 할머니 코 고는 소리를 직접 들려드린다. “혹시 엉뚱한 소리를 한다거나…….” 60년 배우자를 잃고 정신줄 놓았을까 봐 다들 걱정인가 본데,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할아버지가 뇌출혈이 아니라 변사체로 발견됐다면 나는 홍간난 여사를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늙었어도 과부는 과분데 씩씩해도 너무 씩씩하다.
    • 시간이라는 건 의식하면 할수록 더디 간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 보내기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다니.
    • 알아차릴 수 없는 예감이라니. 일이 터지고 나서야 깨닫는 징조라니.
    • 별 볼 일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평범하게 시작된 날, 어떤 예감도 없이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 게다가 그 숨막히는 타이트함이라니. 한 치수 작게 입는 게 유행이라지만, 맹세코 그건 한 치수 작은 게 아니었다. 서너 치수 작았다. 쳐다보는 내가 갑갑할 정도로 겁나게 타이트했다.
    • 참, 오다가 뱀도 봤다. 푸른 바탕에 붉은 무늬……. 붉은 바탕에 푸른 무늰가?
    • 참, 그 얘길 안 했구나.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이 왔을 때, 고인의 둘째 아들 강남수 씨는 노래방에 있었다. 자재부 전체 회식.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엄마는 마늘 냄새, 삼겹살 냄새를 찐하게 풍기며 도착한 아빠를 타박했다. 타박보다는 탄식이려나.
    • 아무리 효자면 뭐해? 인생은 누가 뭐래도 타이밍이다.
    • ‘종택은 주변에 다른 집을 두지 않는 게 관습이라서 고택孤宅이라고도 한다.’
    • 이게 뭐야. 저주는 잔뜩 받았는데 피라미드 안은 텅 빈 거하고 뭐가 달라? 복선을 깔았으면 반전이 있어야 하고, 개고생을 했으면 보물이 나와야지.
    • 분노는 공포를 제압한다.
    • 분노가 식으면서 공포가 되살아났나 보다.
    • 부흥슈퍼 처마 밑에 달린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불빛을 향해 날파리들이 달려든다. 드문드문 산 아래 집들도 불을 켠다. 불을 켜니까 오히려 어둠이 실감난다.
    • “저런 망할년.” 욕은 기본이고 “아녀, 그년이 나쁜 년이라니께.” 텔레비전이랑 대화를 시도했다.
    • 알려나 모르겠다. 구미호는 사람 무덤을 파헤쳐 해골을 뒤집어쓰고 재주를 넘는단다. 그렇게 죽은 사람으로 변해서 그 집에 찾아가서는 “아무개야, 아무개야” 부르는데 그 소리에 대답하면 그 사람은 얼마 안 가 죽는다고. 그래서 한밤중에 누가 부를 때는 세 번 이상 들은 다음에 대답해야 한단다.
    • 발뒤꿈치에 분노를 실어 쿵쾅거리며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 어떤 길이든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 나야 고등교육까지 배운 사람으로서, 더구나 남들보다 길게 공부하는 삼수생으로서 미신 따윈 무섭진 않다.
    • 그저 두 손을 모아 배꼽 언저리에 올려놓고 목뼈가 허락하는 대로 고개를 숙였다.
    • “아니요. 누나 갈 거예요. 막 가려던 참이었어요.” 손만 안 댔다뿐이지 아주 등을 떠민다.
    • 마지막으로 본 누나는 뼈 위에 살갗을 발라놓은 것 같았다. 뼈다귀처럼 앙상한 손을 내게 뻗었다. 나는 그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손을 잡으면 죽음으로 끌려들어갈 것 같았다.
    • 옆으로 누운 할머니 얼굴을 보면 중력이 실감난다. 볼살도 틀니도 축 처졌다. 아까 공이를 불러 생선가시를 줄 때도 그렇고, 무표정한 노인의 얼굴은 왠지 슬퍼 보인다.
    • 예배 때면 사모님은 풍금을 쳤다. 주기도문을 다 외우는 아이에겐 초코파이를 하나씩 줬는데, 주기도문이 뭔지도 모르면서 초코파이는 되게 먹고 싶었던 여섯 살 강무순은 예배시간에 통곡을 했다. “미리 주는 거야. 우리 무순이는 다음 주에 꼭 외워 올 테니까.” 사모님이 다른 아이들 몰래 초코파이를 쥐여줬다. 다음 주는커녕 1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주기도문을 못 외운다.
    • 보고 싶다는 생각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반반.
    • 인생 참 별거 아닌 일로 결정되는구나.
    •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상처는 위로가 힘이 되지만, 정말 지독한 상처는 남들이 아는 척만 해도 고통이 된다.
    • “그건 모르겠고, 더 궁금하면 우리 할머니한테 물어봐. 좀 전에 가스불에 냄비 올려놓은 건 잊어버려도 15년 전 얘기는 빠삭하니까. 불러줘?”
    • 화날 일도 없는데 왠지 화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꽃돌이는 잠깐 딴청을 피우더니,
    • 칼에 찔리면 보통 얼마나 아픈 걸까? 옷에 묻은 피로 봐서 출혈이 상당한 것 같은데,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픈 걸로만 따지면 종이에 손가락을 벴을 때가 더 아픈 것 같다.
    • 죽고 싶지 않아. 소리내어 말해본다. 더 살아봤자 대단할 것도 없지만 죽고 싶지 않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죽고 싶지 않다. 이렇게 죽는 건 싫다.
    • 아홉모랑이길에서 바라본 두왕리는 그림처럼 멈춰 있다.
    • 마당쇠가 허구한 날 빗자루 들고 마당에서 서성댄 건 마당을 쓸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 초인종이었던 거다.
    • 고릿적
    • 모태솔로 주제에 마음만은 화냥기로 가득 찬 네년의 그 숱한 짝사랑 사내놈들 얘기를 들어준 게 이 몸이 아니었더냐?
    • 기호지방의 대표적인 양반 가옥에 초인종이 웬 말이냐고. 그 앞에서 30분이나 고민한 나는 뭐가 되고? 문화재청장에게 확 일러줄까 보다.
    • 아저씨라기엔 뭣하고 할아버지라기엔 미안한 어중간한 연배의 남자다.
    • 시시포스
    • 단발머리를 하고 고개를 살짝 한쪽으로 기울인 유선희는 예뻤다. 아니, 그냥 예쁜 게 아니다. 하얗고, 깨끗하고, 순수하고, 순진하고, 눈은 커다랗고, 눈동자는 까맣고, 목덜미는 하얗고 가느다랗고…… 말하다 보니 뭔가 변태스럽긴 하지만 ‘소녀’ 하면 떠오르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뭉쳐놓으면 유선희가 될 것 같다. ‘씨발’이나 ‘존나’ 같은 말은 입에 담기는커녕 듣기만 해도 눈을 동그랗게 뜰 것 같은 소녀, 치마를 줄여 입지도, 가슴을 돋보이기 위해 조끼를 꼭 붙도록 만들지 않을 것 같은, 모두가 바라는 소녀 말이다.
    • 전국 학부모연합에서 환영할 만한 그런 이성교제를 했나 보다.
    • 그런 시시껄렁한 얘기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내 얘기만 했을까. 그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그치만 누가 알았어야지, 그때가 마지막인 줄.
    • 유난실의 얼굴이 어쩐지 슬퍼 보였다. 잃어버릴까 봐 두려운 것을 갖게 된 슬픔.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을 가져버린 슬픔.
    • 비밀이라는 건 대체로 이와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숨겨놓은 것은 아닌데, 눈에 띄지 않는 어떤 것들.
    • 하얀 셔츠에 멜빵이 달린 청반바지를 입은 소녀는 꽃돌이를 보자마자 안절부절못하며, 핀을 찔러 뒤로 넘긴 앞머리를 부리나케 내렸다. 딴에는 여드름이 난 이마를 가리려는 의도였겠으나, 앞머리가 닭벼슬처럼 뻗쳐서 아니함만 못했다.
    • 사모님 변한 거에 비하면 여섯 살 강무순과 지금의 나는 데칼코마니나 다름없다.
    • 전신화상을 입은 사람을 병문안하는 기분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상처를 모르는 척할 수도, 그렇다고 아는 척할 수도 없는 상황.
    • 할아버지가 쓰던 자전거는 탈것보다는 고물로서의 가치가 더 나갈 정도로 오래됐다.
    • 그건 그렇고, 젠장할, 망할 놈의 학교들은 왜 죄다 언덕 꼭대기에 짓는 거냐구? 교육당국의 음모가 아니고서야……. 심심파적으로 떠난 추억여행에서 객사할 판이다. 목구멍에서 피리소리가 난다. 엄홍길 대장이 칸첸중가에 올라갈 때 숨소리가 이와 같았을까? 여기는 정상. 베이스캠프 나와라. 지금 시간 4시 17분. 빈 운동장엔 매미소리만 요란하다, 오버!
    • 몇 번 만나면서 꽃돌이에 대해 알게 된 게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뭔가를 생각할 때 입술에 힘을 준다는 것. 뭐랄까? 입술이 오므라들면서 닭똥집 같아진달까?
    • 종이컵에 오렌지 주스를 따라주는데, 어찌나 심혈을 기울여 따르시는지, 와인 디켄팅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따른 오렌지 주스를 내 앞에 한 잔, 자기 앞에 한 잔 놓고는 불쑥 말했다.
    • 그제야 정한호 선생은 오렌지 주스보다 나에게 집중했다.
    • 꽃돌이는 열다섯, 중학교 2학년이다. 제가 어른인 것처럼 굴지만 아직 애다. 솔직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어린애. 진짜 감정을 들킬까 봐 입을 쭈욱 내밀고 화난 척하는 꼬맹이. 인생을 아는 누나가 우쭈쭈 해줄 수밖에.
    • 마음 같아서는 서른한 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골고루 떠먹여주고 싶지만. 부흥슈퍼 롯데삼강 냉동고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레몬맛, 꽃돌이는 수박맛을 골랐다.
    • 옆으로 누워 잠든 홍간난 여사를 보면 중력이 실감난다. 할머니는 자기 전에 틀니 빼놓는 걸 자주 잊어버린다. 틀니가 입 밖으로 떨어질 듯 말 듯 늘어졌다. 볼살도 늘어지고 입술도 늘어지고. 뉴턴에게 할머니가 있었다면 사과밭에 갈 것도 없이 안방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냈을 텐데.
    • 말과 행동이 다른 아줌마는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끝을 길게 빼는 목소리가 애교스러워서 좀 더 젊은 줄 알았는데 거의 할머니에 가깝다. “이쁘게 생겼네.” 다시 보니 웃는 주름이라, 아주머니 인상이 참 좋다.
    • 말이 뚝 끊어졌다. 손님도 주인도 침묵을 메우지 못했다.
    • 쉴 새 없이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서 소나무 냄새가 났다.
    • 흔들리는 나무가 없다면 바람이 지나는 걸 몰랐을 거다.
    • 그때 구남이가 우리 아빠를 구해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세상에 있었을까? 아빠에게는 그 이후로도 두세 번쯤 죽을 고비가 더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 친구 오토바이 타고 가다가 죽을 뻔, 군대 있을 때 고문관 수류탄에 죽을 뻔했단다. 우리 엄마도 한두 번은 죽을 뻔했을 테고, 할머니, 할아버지, 그 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죄다 그럴 텐데……. 그러고 보면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기적이다. 지구상에 단백질이 처음 생겨나고, 생명체가 등장하고, 물속 생물이 육지생활을 시작하고, 원숭이를 거쳐 인류가 등장해 강무순에게 전달될 때까지 나의 DNA는 수억 년을 무사고 배달된 셈이다. 그 숱한 죽을 뻔한 고비를 숱한 행운과 숱한 구남이들의 도움으로 이겨낸 위대한 기적. 생존하는 모든 생물은 기적의 결과물이다! 말해놓고 보니 무슨 사이비 종교 지도자 같구만.
    • 전북 고아원에 갔던 목사님은 왜 집으로 가지 않고 반대쪽 저수지로 향했을까? 알고 보면 별거 아닌 이유일지도 모른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볼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고, 느리실 쪽에 볼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 다쳤다는 걸 몰랐을 땐 아픈 줄도 몰랐는데, 피를 보자 절뚝거릴 만큼 아프다.
    • 아저씨라기엔 뭣하고 할아버지라기엔 미안한 얼굴, 유미숙 아빠다.
    • 불행은 그렇게 일상을 무너뜨린다. 아니다. 일상이 무너지는 게 불행일지도.
    • 유미숙네 이야기를 하다 보니 8시 20분이다. 신데렐라에게 12시와도 같은 절대시간. “그 오살헐 놈이 죗값 받는 꼴을 봐야 속이 시원허겄는디…….” 오살할 놈이란 드라마 속 악의 축 기획실장을 가리키는데, 그 말을 끝으로 홍간난 여사는 드라마월드로 들어가버렸다.
    • 사람을 홀리는 반지에 대한 영화. 그 반지를 갖게 된 사람은 점점 미쳐간다. 반지 이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얼굴도 점점 괴물처럼 변해간다. 나중에는 그가 반지를 갖는 게 아니라 반지가 그를 소유하게 된다.
    • 그날의 바람이 기억난다. 그날의 하늘도 생각난다. 그리고 그날의 그 아이. 어떤 추억은 너무 선명해서 그후의 날들은 빛을 잃기도 한다. 그날로부터 15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 세월을 산 것 같지가 않다. 내 시간은 그날에 멈췄다. 그날 이후의 날들은 그날을 추억하는 데 필요했을 뿐이다.
    • 반지가 괴물을 소유하듯 추억이 나를 먹어버렸다.
    • 대청마루에 모로 누운 미망인, 홍 여사의 눈이 빗줄기 너머 먼 곳을 헤맨다.
    • 노인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무표정일 때도 슬퍼 보인다. 어쩔 땐 웃어도 슬퍼 보인다. 홍간난 여사에게도 희로애락이 있을 것이다. 속상하고 울고 싶고 누군가 보고 싶어서 손끝 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가 당연히 있을 것이다.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는 날 때부터 할머니인 것만 같았다. 이 늙은 사람도 한때는 누군가의 아기였고, 어린 동생이었고, 사랑이었던 때가 있었다는 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나도 이렇게 늙어갈 것이다. 절대적으로 늙어갈 것이다. 0.001퍼센트의 예외도 없다. 그러니까 홍간난 여사는 나의 미래다. 예정된 슬픈 미래. 아니다. 아주 운이 좋아야 맞이할 수 있는 미래다. 온갖 불행한 사건사고를 피해 무사히 늙어야만 맞이할 수 있는 미래!
    • 그날 밤에 사모님이 울었다. 사람이 우는 소리라는 걸 알고 듣는데도 사람의 목소리 같지가 않았다. 꼭 짐승이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어딘가 몹시 다친 짐승이 우는 소리.
    • “없어지지 않고 남었으니께 밭도 매고, 일도 허고 허는 거 아녀. 고마운 줄 알어.” 너무 고마워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 명아주라는 풀이 있다. 홍간난 여사의 설명에 의하면, “거렁뱅이 지팽이라고도 허여.” 풀 주제에 오래되면 나무처럼 딱딱해져서 지팡이로 쓴단다. 지팡이로 쓰기엔 턱도 없지만 풀이라기엔 제법 뻣뻣한 놈을 뽑았더니 개미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하필 개미집 위에 풀이 자랐나 보다. 아니면 풀뿌리 밑에 개미집을 지었든가. 개미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다. 대재앙에 아드레날린이 퐁퐁 솟구쳤는지 공격적이 된 개미는 사방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무너뜨린 원수를 찾느라 바쁘다. 그렇다고 당할 내가 아니다. 멀찌감치 서서 빨빨거리는 개미들을 유유히 내려다봤다. 저들은 죽을 때까지 나란 존재를 모르겠지. 자신들의 삶을 일시에 무너뜨린 이 거대한 존재를. 목적도 악의도 없이 나는 개미의 세상을 무너뜨렸다.
    • 문득 홍간난 여사가 버스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뛴다기보다는 뛰려고 노력했다는 표현이 적확하겠지만.
    • 나름 시스루로 드레스코드를 맞추긴 했지만 쫙 빼입었다기엔 쫌……. 뭐, 밭매다 말고 뛰쳐나온 홍간난 여사나 나에 비하면 그대로 런웨이에 서도 될 정도긴 하다.
    • 어디서 봤더라? 밀담을 나누기에 가장 좋은 곳이 노래방이라고. 사방이 노랫소리로 시끄러워서 다른 사람 얘기를 엿들을 수가 없는 데다가 도청도 불가능하다나.
    • 내일 비 온댔는데. 비를 몰고 오는 구름이 뭐였더라. 적란운?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는데 생각이 안 난다. 그런 걸 배웠다는 것만 생각난다.
    • 나도 인사했다. 좀 전까지 몹시 안녕했지만, 이제는 나 때문에 안녕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에게.
    • 비밀이 드러난 유미숙 일가는 우왕좌왕이다. 유미숙 엄마는 ‘여긴 웬일이냐’, ‘어떻게 왔냐’, ‘혼자 왔냐’ 대답은 듣지 않고 질문만 해대더니, ‘딸이 웬수’였다가 ‘우리가 무슨 죽을 죄라도 저질렀나’ 사이를 빠르게 왕복하며 혼잣말을 늘어놨다.
    • 빈 의자가 있는데도 유미숙 엄마는 서 있었다. 대신 거울 앞 테이블에 엉덩이를 반쯤 걸쳤다. 아기가 칭얼거릴 때마다 엉덩이를 출썩거렸다.
    • 5자회담의 중앙 테이블에는 주스가 자리잡았다. 그런데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 거다. 유미숙 일가야 주스 먹을 정신이 없을 테고, 홍간난 여사는 칼슘두유 때문인지 목이 안 마른 것 같다. 나로 말하면 아까부터 배도 고프고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다. 슬그머니 주스 잔을 잡는데, 그걸 신호로 삼았는지 유미숙 엄마가 입을 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손을 뻗을걸…….
    • 등짝을 얻어맞은 유미숙이 몸을 비틀며 얼핏 웃었다.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졌다.
    • 15년 묵은 이야기를 토해낸 유미숙 엄마는 되레 시원해 보였다. 묘하게 당당한 느낌까지 났다. 내내 말이 없던 유미숙 아빠는 마지막에 한마디 보탰다. “입이 열 개라도 헐 말은 없습니다.”
    • 손 없는 날
    • 죄인처럼 산 15년이었다더니, 무슨 죄인들이 저렇게 발랄한 거야? 하긴 감옥 안이라도 웃고 떠들 때도 있겠지.
    • 홍간난 여사가 곤란해하자, 유미숙 엄마 아빠가 긴장한다. 마지막 문제 풀었다고 연필 놓았는데, 또 무슨 문제가 남았단 말인가.
    • “그러게 거짓말은 바랭이풀 같은 거여.” “바랭이풀이 뭔데?” “풀 말여. 풀. 고구마밭에서 봤잖니.” 두 손바닥을 활짝 펴 보인다. “왜, 이렇게 천지 사방으로 뻗어나가서 줄기마다 뿌리 내리고 그러는 지랄 맞은 풀 있잖어. 그게 처음 나왔을 때는 맨손으로도 쉽게 뽑힌단 말여. 그때 뽑아줘야 되는데 실기失期허고 나믄 당최 어려운 거라. 뽑기도 어렵거니와 호미로 푹푹 파서 뽑아낸다고 혀도 고구마 줄기까지 다 상하지 않디? 바랭이풀이 꼭 거짓말 같어. 묵으면 묵을수록 털어놓기도 힘들고, 야중이 털어놓는다고 혀도 처음 같지 않고.” 듣고 보니 어린 왕자의 바오밥나무랑 비슷하다.
    • 8시에 일 시작했으니까 다섯 시간 만의 휴식이다. 50년은 지난 줄 알았는데.
    • 만인의 연인이란다, 참. 입고 있는 붉은 악마 셔츠만큼이나 철 지난 표현이로세.
    • 고 실장은 뭔가를 생각할 때면 입술 끝에 힘이 들어가나 보다. 불독 같다고 해야 할지, 심술맞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못생긴 얼굴을 더 못생기게 만들면서 심사숙고했다.
    • 진정한 슈퍼맨은 두왕리에 있었다. 빨간 빤스 입고 날아다니는 거? 그까짓 게 뭐가 힘들어. 지구를 구하는 거? 콩밭 매는 거에 비하면 일도 아니다. 단언컨대 노동은 신성하다. 절대적으로 신성하다. 그러므로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다.
    • “딸자식 잃어버린 뒤로는 누구랑 말을 섞기를 허나, 웃기를 허나…… 소리지르고 울기라도 허믄 달래기라도 허지.”
    • 40년도 안 된 얘긴데 어째 전설의 고향 같다.
    • 무석이만 해도 내 첫사랑 국어선생님 사진에 코피를 그려놓았었다. 그 덕분에 무석이는 진짜 코피를 흘리게 됐지만.
    • 만인의 연인이란 건 누구의 연인도 아니란 얘기야, 응? 멀리서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다가오지 않아. 외롭겠지? 당연 외롭지. 이름만 다르다뿐이지 왕따랑 뭐가 달라?
    • 짜식이 말이야. 내가 지금 누굴 위해 머리를 쓰는데? 수능 때도 아껴 쓴 머리를.
    • 아이디어 하나 내놓지는 않으면서 내가 낸 아이디어는 족족 까댄다.
    • 아아, 와이파이여. 인터넷이여.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하구나.
    • 어째 알면 알수록 유선희 이미지는 점점 흐릿해진다.
    • 뭔가 신경 쓰이는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 발바닥이 가려운데 어디가 가려운지 모르겠는 느낌.
    • 한뎃잠
    • 이 이야기도 나로서는 전설 따라 삼만리다. 당최 홍간난 여사에게 30대 초반, 우리 아빠 강 부장에게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 있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아기장수가 태어나자마자 걸었다는 것만큼이나 믿기 힘든 판타지.
    • 이야기가 다 끝난 뒤에도 풀잎만 찢어대는데, 긴 목덜미에 푸른 반점이 보인다. 얼핏 하트 모양이다. 하긴 꽃돌이 목덜미에 있으니 하트 모양인 거고, 다른 사람 목덜미에 있으면 엉덩짝인 거고.
    • 희망은 원래 재앙이었다. 전쟁, 질병, 살인 등과 같은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것.
    • 알 권리? 그런 권리는 정치인의 비자금 수사나, 대기업의 부당한 유산 상속 같은 문제에서나 행사하란 말이다. 그저 손쉬운 시골 노인네들을 상대로 어르고 윽박지르지 말고.
    • “아, 예은이 졸졸 따라다니던…….” 그것보다는 같이 놀았다는 표현이 어떨까 싶지만, 뭐…….
    • 마을에 하나뿐인 가로등만 환했는데, 불에 이끌린 날파리들이 부산스러웠다.
    • 상대방이 애통해해야 위로라도 할 텐데, 별로 슬퍼 보이지 않는 사람한테 ‘너무 슬퍼 마세요’ 하기도 그렇고, 딱히 할말도 없어서 홍간난 여사가 빨리 일어나기만 바랄 뿐이었다. 주스를 다 마실 때까지 안 일어나면, 실수를 가장해서라도 보조침대를 걷어찰 생각이었다.
    •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견딜 만큼만 시련을 주신단다……. 아마 하나님이 고난의 양을 잘못 측정하셨나 봐.
    • 텔레비전에서는 박자도 음정도 안 맞는 여름 노래가 나왔다. 전국노래자랑이다. 그러고 보니 일요일이었다.
    • ‘내가 미쳐, 진짜’라고 할 때는 거의 고함 수준이었다. 마치 어제 그런 일을 당한 것처럼 조하은은 흥분했다. 얼굴이 붉그락푸르락했다. 병실 사람들은 전국노래자랑보다 더 재밌는 걸 힐끔힐끔 시청했다.
    • “그래갖고 그게 네 지식이 되겠냐?” “삼수생한테 그런 말 들어봤자거든.” 망할 놈. 삼수생이니까 그런 말할 자격이 되는 거지. 남들보다 세 배나 더 공부한 사람인데.
    • 재경이 할머니가 기자들한테 시달리는 유미숙 엄마 아빠를 하도 불쌍하다고 안쓰러워하길래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어’ 하고 얘기해줬단다. 그다음부터는 민들레 홀씨다. 혼자만 알고 있으라면서 전달, 전달.
    • 간디의 비폭력 운동이 참 효과적인 방법이었구나, 직접 보니 이해가 간다. 한쪽이 전투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다른 쪽의 전투 의지도 사그라든다.
    • 아. 우리 홍 여사는 엄청 손해를 봤다. 집에 돌아왔더니 열어놓은 된장 항아리에 쉬파리가 까맣게 앉아 있었던 거다. 그날 오후 내내 똥파리가 앉았던 된장 표면을 걷어내고, 다독이고, 혹시 벌레가 생겼나 뒤적여보고 얼마나 속상해하던지, 그 좋아하는 일일드라마를 보다가도 불쑥불쑥 탄식을 쏟아내는 거다. “동네 똥파리들 잔치했겄다. 누구를 탓혀? 늙은 게 병신이지.” 자기 탓을 했다가, “늙은 년이 허둥대면 어린 년은 뭐를 헌 겨? 그런 거 하나 알아서 못하고.” 내 탓도 했다가, “망할 놈의 동네, 이사를 가든가 해야지. 자고 나면 시끄러우니.” 동네 탓도 했다가, “잘 망했다, 그놈의 집구석. 남의 눈에 눈물 나면 지 눈엔 피눈물 나는 거여.” 이건 드라마 이야기.
    • 누누이 말하지만 뭐든 첫 마디가 어렵다. 사랑 고백도, 이별 선언도, 누군가의 정체를 까발리는 전화도.
    • 이 상황에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여보세요’는 홍간난 여사가 구사하는 유일한 표준어다.
    • 대전에서 제일 큰 호텔 스카이라운지 커피숍에 등장했을 때 우리는 시선을 한 몸에 받았는데, 조선시대 주막집에 양복 입은 선교사가 들어왔을 때의 풍경이 대충 그랬을 거다. 과장이 아니다. 한복 입은 할머니, 추리닝 차림의 삼수생, 교복 입은 꽃돌이! 따로따로 들어와도 눈에 띌 텐데 일행이다.
    • 사리마다
    • 두왕리 네 명의 소녀 실종사건 역시 거대하고 치밀한 미스터리 같은 게 아니었다. 따로따로 일어났으면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해프닝이 어쩌다 보니 한꺼번에 일어났고 거대해진 거다. 그러고 보니 우리 세 사람 같다. 따로따로 있으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데, 같이 있으면 수상해지는 할머니와 삼수생과 꽃돌이 일행.
    • “그건 말이지. 임신테스트기였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고함을 지르며 테이블을 내려치지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뺨을 후려치지도, 물을 뿌리지도 않았다. 드라마였다면 ‘쿠궁’ 하는 효과음과 함께 그중의 하나를 행동에 옮겼을 텐데. 아니면 차례대로 다 하거나.
    • 꽃돌이는 꾸벅 인사를 하고 다리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가 밤 9시가 되기 전이었는데, 낮이 밤으로 변하는 무경계 속으로 걸어가는 꽃돌이 등이 구부정했다.
    • 사실과는 전혀 다른 시나리오를 상상한 주제에, 어쩌면 이것을 예상했던 거 아닌가 하는 뻔뻔한 생각이 들었다. 원래 기시감이란 그런 거니까.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야 확실해지는 것,
    • 누군가 죽었다면 누군가는 살아남은 것만으로 가해자가 되나 보다
    • “그때 걔가 그렇게 죽는 걸 보지만 않았으면 나도…….” 황부영은 그다음에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그때 조예은이 죽는 걸 보지만 않았어도 자기는 훨씬 행복했을 거라고? 그때 조예은이 죽는 걸 보지만 않았어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닐 수 있었을 거라고? 그때 조예은이 죽는 걸 보지만 않았어도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을 거라고? 대답이 뭔지 이제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 나 역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삼수생과 백수의 중간 어디쯤. 나의 초라함과 무력함을 남들이 알아챌세라 먼저 낄낄대는 생활 말이다.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뭐 그냥 그렇게.
    • 깔끔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뭔가 개운하지 않은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의 어떤 일이 칼로 자른 무처럼 깨끗한 시작과 결말을 갖는 걸 본 적이 없다. 낮과 밤은 분명 구분할 수 있지만, 낮이 밤이 되는 순간을 특정할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그렇게 명료하지 않다고.
    • 드라마라고 해보자. 15년 전에 실종된 누나가 있다. 그 뒤 이런저런 문제로 입양된 남동생이 있다. 그런데 이 누나는 실종되기 전에 임신테스트기를 훔쳤다. 드라마라면 간단한 문제다. 유의미한 대화와 운명적인 만남의 연속. 하지만 일상은 다르다. 쓰잘 데기 없는 대화, 우연한 만남, 허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단 말이다. 임신이 아닌 헛구역질을 무수히 하고, 뇌졸중이 아닌 그냥 두통이 훨씬 많다.
    • “그거 알어? 아이가 사라지면 경찰은 제일 먼저 그 부모를 의심한다는 거.”
    • 내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꽃돌이는 돌아보지 않았다. 아홉모랑이길이 달빛에 유난히 환하게 보였는데, 소년은 길을 따라 조금씩 멀어지더니 어느 사인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 아이들 몇몇이 ‘창희야, 창희야’ 이름을 불렀지만, 그건 대답을 기대했다기보다는 침묵을 견딜 수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 종손과 종부가 나를 바라봤다. 절벽에 매달리면 저런 눈이 될까? 나는 구원이 아닌데도 그들은 구원의 말을 기다린다.
    • 대체로 자식들은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고 있다. 또 훨씬 더 어른스럽다. 나도 자식이라서 좀 안다.
    • 쓰고 버린 휴지처럼 길바닥에 널브러진 꽃돌이를 봤을 때는 죽은 줄 알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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