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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Books 2020. 4. 3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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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현대미술에 관해 궁금했지만 선뜻 묻지 못했던 질문들에 상쾌하게 답한 책이다. 미술작품을 대하고 당혹스러웠던 점, 미술계가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지 못했던 주제들, 그리고 큐레이터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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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에 왔다가 청소부가 작품 하나를 쓰레기통에 버린 것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 우리는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를 경험할 때 본래의 자신보다 한 단계 고양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면에서 예술은 가장 기본적으로 지루한 일상에 휴식이 되고 여유를 준다. 예술의 능력이 최고로 발휘되면 상상도 못할 만큼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다. 예술은 인생에 관해 더 큰 질문을 하게 하고,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 갖고 있던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깨부순다.
- 또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려 서로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정서를 공유하게 함으로써 무궁무진한 일들을 해낸다.
-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빠르게 확산되고 정치적 입장이 양극화되어 이견을 좁히기 어려운 시대에 예술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 문제의식을 발전시키고 상상할 기회를 준다.
- 예술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하나의 관점으로 규정짓지 않고, 그 안에 다양한 의미가 저절로 생겨나도록 하는 특성
- 어떤 현상도 수많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술의 속성 때문에 예술은 늘 현재 상황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우리가 원래 해왔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런 깨달음은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 현대미술은 우리의 현재를 정확히 보여준다.
- 현대 미국의 지역 사회와 자연풍경의 이미지를 카메라 렌즈에 담는 사진작가 캐서린 오피Catherine Opie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순간을 작품에 담아보자는 아이디어는 단순히 그 안의 나를 찾으려던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그건 인류 모두의 크나큰 욕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현상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 바로 그 욕구가 위대한 예술가들을 매혹하고 영감을 갖게 하는 동력이다.
- 예술작품을 만드는 행위는 결국, 자신의 일부를 세상에 내놓는 일이고 누군가에게 비판받을 위험에 자신을 내모는 일이다. 또 내 생각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마치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보상에 대한 기대도 없이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길을 떠나는 여행과 같다.
- 미술사학자 E. H. 곰브리치E. H. Gombrich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도 좋으리라.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 가나 출신의 미술가 엘 아나추이El Anatsui의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아나추이는 금속을 소재로 대규모 설치작품을 만드는 작가로 유명한데, 지역 재활용센터에서 얻은 병뚜껑 수천 개를 이용해 작품을 만든다. 그는 나이지리아 은수카Nsukka에 있는 작업실에서 조수 여러 명과 팀을 이뤄 병뚜껑을 비틀거나 찌부러뜨린 다음, 조심스럽게 서로 이어 붙여 무늬가 복잡하고 화려한, 걸 수 있는 조각품을 만든다. 원칙적으로 작가가 설치 방법을 지시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설치할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모양새를 취한다. 작품을 설치하는 특정한 방식이 없다 보니 각각의 작품은 전시되는 공간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장소에서는 작품을 벽에 걸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작품을 접거나 땅 위에 설치하기도 하며, 한번은 작품을 정원에서 전시해 울타리 위로 작품을 늘어뜨리기도 했다. 큐레이터와 작품 보존 전문가도 작품 설치에 참여하는데, 이들은 서로 협력해 설치 방식을 결정하고 작품을 가장 적절하게 전시할 방법을 작가에게 조언하기도 한다.
- ‘예술은 무엇인가?’, ‘오늘날의 미술은 어떻게 탄생했나?’ 같은 질문에 대답하기가 힘든 까닭은 예술이란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시대마다 이 질문에 원하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 답이 지금까지도 예술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기본적으로 예술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탄생했고 감상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의 개념이 성립된 것은 겨우 17세기로, 유럽에서 막 계몽주의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지식인들은 기존의 도덕, 정치, 종교 체계에 도전하기 위해 이성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또한 예술가들은 예술을 가르치고 훈계하고 즐거움을 주는 목적에서 해방시키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은 19세기에 더욱 탄력을 받았는데 프랑스의 예술비평가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는 예술은 예술 고유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도덕, 정치, 역사, 종교의 간섭 없이 예술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예술을 위한 예술’의 개념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 예술가들이 기존의 예술 형태에 감히 의문을 제기하고 과거의 스타일을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이 열렸다. 그리고 발전된 사회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제작하면서 근대미술이 시작되었다. 이 새로운 예술은 급진적으로 발전해 온 과학기술, 교통, 산업의 모습과 함께 이것들이 당시 사회·경제·문화에 미친 엄청난 영향까지 그대로 반영했다.
- 모든 시대의 예술가는 그 당시 시대와 문화의 산물이다.
- 18세기에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19세기에 카메라가 처음 탄생했다.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그림의 오랜 역할은 사진의 발달과 함께 곧 무색해졌다. 그 후 거의 100년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사진이 단순한 시각적 기록물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예술을 표현하는 하나의 매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 제2차 세계대전, 냉전, 탈식민주의, 인터넷의 발명, 그리고 세계화 같은 사건과 이념이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예술을 만드는 방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 ‘현대미술’이라는 용어가 이렇게 흔해지기 훨씬 전부터(⇢ C로) 모든 역사적 순간을 대표하는 ‘현대적인’ 예술가들이 존재해 왔다. 오늘날 생산되는 예술이 우리에게 현대적으로 여겨지듯, 지금은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작품도 당시에는 현대적이었으리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바라보면 그 작품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듯하다.
-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 현대미술의 개념은 근대미술이 처음 등장했던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과 단절하며 훨씬 전위적이었던 근대미술은 그렇게 고대미술의 범주에서 벗어났다. 그때 이후로 현대미술은 현재에 단단히 기반을 두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역사를 뒤로 남기는 시간대를 이르게 되었다.
-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중요한 구분점이라고 여긴다. 과거에는 예술가들의 일관된 운동이나 특정 집단에 의해 예술이 발전했지만, 이때부터는 더는 어느 한 도시, 한 그룹의 사람들이 선두가 되어 유행을 이끄는 일이 쉽지 않게 되었다. 발전은 늘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에 일어났으며 ‘지구촌’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예술작품이 특정 이슈(페미니즘, 에이즈에 대한 인식, 대지의 활용 등)와 관련이 있거나 혹은 응용 철학의 한 형태로 인간의 상태를 연구하는 수단이 되었다. 현대미술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직면한 쟁점들을 곰곰이 되새겨 보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예리하게 사회를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
- 세상이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우리의 의견도 진화하고 관점도 달라지듯이 현대미술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 티노 세갈Tino Sehgal
- 오브제
- 세갈은 세상에 이미 너무 많은 사물이 존재한다고 여겨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어떤 물질적 변환도 거부한다.
- 그래서 글로 쓴 지시문이나 전시 도록, 사진 자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사려고 해도 계약서나 문서도 따로 작성하지 않아서 공증인이 출석한 가운데 작가가 구두로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다.
-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남성용 소변기에 ‘R.무트R. Mutt’라고 사인해 1917년 뉴욕 독립미술가전에 출품했을 때, 위원회 측은 작품이 아니므로 전시할 수 없다고 이를 거절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대량 생산된 제품을 작품으로 전시하겠다는 뒤샹의 생각은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모름지기 예술가는 독특하고 섬세한 솜씨로 공들여 작품을 만드는 숙련된 창조자라는 생각이 수세기 동안 이어져 왔는데, 뒤샹은 스스로 ‘레디메이드’라고 지칭한 이 작품으로 그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순수 미술이란 정교하게 갈고 닦은 선과 형태를 다루는 솜씨와 기술, 대가의 기교가 합쳐져 이루어지며 우리가 감탄하고 존경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지금도 지배적이다. 현대미술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몹시 언짢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장인의 솜씨가 빠져 있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 영상, 퍼포먼스 작품이 점점 늘어나면서 더는 이런 종류의 기술이 어떤 작품을 미술사의 기록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 전제조건이 될 수 없는 게 명백해 보인다. 사실 ‘이게 예술이야?’ 하고 묻기보다는 ‘뭔가가 예술로 변신하는 순간은 언제부터지?’라고 묻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훨씬 더 흥미로워진다
- 갤러리라는 공간이 지닌 맥락이 어떤 사물을 예술로 정의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고려해야 할 다음 질문은 ‘나는 이것이 미술이라고 믿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예술작품은 제안이라는 사실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어떤 사물을 예술로 보라고 청하는 초대장과 같다.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다른 지침에 따라 접근해 보기를 권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내포한 강한 의도가 관객에게 어떤 의미를 끌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 벌거벗은 임금님 앞에서 벌거벗었다고 큰소리로 외칠지 말지 결정하는 사람은 관객 개개인이다. 어떤 사물이 예술인지 아닌지 묻고 싶은 충동을 잠시 억누른다면 그런 일련의 질문에 빠져 허우적대는 일은 곧 작품과 관계 맺기를 거부한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술에 대한 인식은 사람들의 가치관과 현실이 변하듯 함께 변화한다. 그리고 한 세대에게는 하찮게 여겨지던 사물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세대에겐 예상치 못했던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다. 여하튼 미술 세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거 예술 맞아?’라는 물음이 식상하고 부적절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이게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지?’라고 질문해 보면 어떨까?
-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의 표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예술가의 똥, 정량 30그램,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에 생산되어 저장됨 1961년, 만초니는 한 달여 기간 동안 이런 통조림 90개를 제작해 각각 에디션 넘버를 붙인 뒤 진품임을 보증하는 서명을 남겼다. 그리고 모노그램으로 디자인한 라벨에는 4개의 다른 언어로 각각 상품명을 적어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 이 통조림의 가격은 통조림과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책정되었으며,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은 주요 미술관이 한 캔을 억 단위로 구매할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논쟁을 일으키며 계속해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 만초니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가에 대한 컬렉터의 기대와 미술 시장을 함께 조롱하려고 했다. 같은 해에 그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컬렉터가 작가에게 친밀한 무언가, 정말 개인적인 무언가를 원한다면, 여기 예술가가 직접 싼 똥이 있다. 이 똥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의 것이다.” 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배설 행위를 포장, 마케팅하고 새롭게 브랜드화해 창의적인 활동으로 재탄생시켰다. 만초니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오브제가 소비주의와 상업주의의 메커니즘에 철저히 속박되었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정점에 미술작품이 있다고 여겨 예술품으로 만들어진 최종 결과물을 미화해 마치 고급 상품을 다루듯 했다. 전례 없이 작가 자신에게 초근접한 만초니의 똥은 독특함으로 무장한 진정한 작품이다. 그래서 우리 같은 일반인이 만들어낸 비루한 버전과는 구별된다.
- 그런데 이 작품에는 항상 따라붙는 질문이 하나 있다. 정말 캔 속에 똥이 들어있긴 할까? 하지만 내용물을 확인하자고 이렇게 비싼 작품을 함부로 훼손할 수도 없는 일이라 이런 불확실성이 작품에 아이러니한 요소를 한층 더 가미하고 있다. 캔은 똥으로 가득할 수도 있고 텅 비어있을 수도 있다. 캔 속에 뭔가가 있든 없든 그 사실을 안다고 과연 달라질 게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작품이 지닌 환영과 신비를 사들였다는 사실이다. 5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은 미술 시장의 본성과 부조리함을 재치 있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신선하게.
- 아트페어와 비엔날레가 생겨난 지 겨우 30년에서 4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이 두 행사는 현대미술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도 눈에 띄는 현장이 되었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는 비교적 새로운 장르의 대규모 국제 전시회로서 한 도시 내의 여러 장소에서 서너 주 또는 서너 달에 걸쳐 진행된다. 대개 초대 큐레이터(예술감독, 예술총감독이라고 부름)의 아이디어를 통해 전체적인 틀이 만들어지며, 초대 큐레이터는 관련 강의, 퍼포먼스, 워크숍, 출판 등의 프로그램뿐 아니라 새로운 위원단과 작품을 선정하는 일까지 행사 전반을 총괄한다. 전 세계 미술계를 한 곳으로 집결시키는 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공식적인 상태를 점검하는 중요한 자리이다. 이런 행사들이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행사마다 처음 탄생하게 된 역사, 문화, 지형적 배경은 모두 다르다.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도큐멘타(1955~)는 전후 독일의 문화적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카셀에서 생겨났으며, 광주 비엔날레(1995~)는 한국의 민주화를 기념하기 위해,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1995~1997)는 아파르트헤이트(예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 정책)의 종말을 축하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 야심 찬 프로젝트들은 우리가 정치, 인종, 정체성, 세계화, 탈식민주의와 관련된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그 주제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열린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 비엔날레 못지않게 중요한 행사가 바로 아트페어이다. 크고 작은 규모의 상업 갤러리들은 새롭게 발견해낸 작품,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온 걸작을 전시하기 위해 전 세계를 날아간다. 한편 컬렉터들은 세계 곳곳에서 온 젊고 감각 있는 예술가를 찾기 위해 아트페어를 방문한다. 비엔날레와 마찬가지로 아트페어 역시 지금은 국제적인 행사가 되었다. 현재 대표적인 아트페어로 일컬어지는 아트바젤Art Basel은 바젤과 마이애미, 홍콩에서
- 그리고 프리즈 아트페어Frieze Art Fair는 런던과 뉴욕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일정 기간 작품을 전시하는 아트페어의 주요 목적은 작품을 사고파는 것이지만, 평소 관람이 어려운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기도 하고, VIP를 위한 작가 작업실 방문 투어를 진행하거나 유명 큐레이터 또는 지식인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기도 한다. 이 모든 이벤트가 아트페어에 더해져 미술 애호가라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흥미진진한 행사가 되었다. 더불어 아트페어 기간은 지역 미술 관련 기관과 신인 작가에게도 무척 중요한 시기이다. 그들은 이 기간에 맞춰 전시회 스케줄을 조정하여 행사가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이 노출될 수 있도록 한다.
- 비엔날레는 행사 특성상 기간이 한정적이고 외국인 관객의 취향에 맞추어 전시를 기획하는 경우가 많아 현지 지역 사회와 장기간 교류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아트페어는 화려하고 극적인 볼거리, 팔리는 미술에만 치중한다는 비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 1895년에 처음 개최되어 ‘모든 비엔날레의 어머니’라는 별명이 붙은 베니스 비엔날레는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가운데 하나이다.
- 베니스 비엔날레는 크게 예술총감독이 기획하는 대규모 전시와 국가관 전시로 나누어지며, 다양한 부대 행사가 함께 진행된다. 각 나라의 국가관은 커미셔너 한 사람이 독립적으로 기획하는데, 커미셔너는 그해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예술가나 단체를 선정해 작품을 전시한다. 베니스의 동쪽 끝에 위치한 유명한 공원, 자르디니Giardini 주변에는 30개의 나라를 위해 특별히 건립되어 영구 운영되는 구조물이 흩어져 자리하고 있다. 최근 몇십 년 사이 참가국 수는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전시 공간은 부족하다 보니, 많은 국가가 자르디니 공원 바깥에 임시 전시장을 마련하고 있어 베니스의 여러 섬 지역으로 전시 공간이 확장되고 있다.
- 자르디니에도 규모가 큰 전시장이 있어 메인 주제전의 일부가 전시되는데, 그해 비엔날레를 위해 특별히 임명된 감독이 전체 전시를 총괄한다. 기획전의 또 다른 일부는 옛 조선소 및 무기고 건물이었던 아르세날레Arsenale 근처에서 열리며, 그 안에도 몇몇 국가관이 설치되어 있다. 예술총감독의 선출은 항상 미술 세계의 가장 뜨거운 뉴스인데, 그 이유는 비엔날레의 예술 감독직이 아마도 큐레이터로서 가장 영예로운 자리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선택된 예술총감독은 관객이 예술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실험적인 작품을 전시해 자신만의 비엔날레를 만든다. 그러므로 ‘누구누구의 비엔날레’라고 하는 식으로 선정된 큐레이터의 이름이 그해 비엔날레와 동의어로 불려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 아페롤 스프리츠
- 과학기술은 늘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표현 도구를 제공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카메라옵스큐라(드로잉의 보조 도구로 사용했던 광학적 장치)를 사용한 15세기부터 인터넷 아트가 출현한 지금까지 과학기술의 진보는 항상 새로운 작품 형태를 만들고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해왔다.
-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비디오카메라 가격이 내려가고 휴대가 편리해지면서 예술가들은 테이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테이프는 반복해서 기록하고 즉시 재생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새로운 자유를 얻은 예술가들은 즉흥적인 실험을 할 기회가 더 많아졌고, 예전처럼 최종 결과물을 한 장면 한 장면 계획할 필요가 없어졌다.
- 예술가들은 객관성, 정확성, 정보, 매스컴을 상징하는 도구인 비디오를 감시의 개념, 그리고 공공과 개인 사이의 경계를 연구하는 용도로도 사용했다. 게다가 이 매체는 상영 시간이 정해져 있고, 전통적인 미술 오브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람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이렇게 전시 경험을 완벽하게 바꾸어 놓은 비디오 아트의 꼬리를 물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잇따랐다. 예술작품을 기술로 조작한다면 예술의 진정성과 고유성이라는 개념에 어긋나지는 않나? 디지털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어떻게 전시되고 저장되어야 할까?
- 심지어 이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 과학기술은 곧 조각의 소재(백남준의 텔레비전 작품, 댄 플래빈Dan Flavin의 형광 튜브를 이용한 작품 참고)로 사용되었고, 알고리즘과 코드는 새로운 디지털 미학(테이터를 도면화하는 출력장치인 컴퓨터 플로터가 처음 개발되자 이 기계를 이용해 무작위로 그림을 그린 만프레드 모어Manfred Mohr와 인터넷 초창기 시절 HTML 코드로 온라인 드로잉을 그린 조안 힘스커크Joan Heemskerk, 더크 페스만Dirk Paesmans 두 명의 작가 그룹, 조디JODI 참고)을 창조해 냈다. 더욱 최근의 젊은 예술가들은 3D 프린팅, 소셜 미디어, 컴퓨터 게임으로도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50, 60년 전의 기술로는 가능하지도 않았던 이 광범위한 작업을 아우르기 위해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뉴미디어 아트’라는 용어가 탄생했지만, 지금은 이 매체들 대부분이 그렇게 새롭지도 않을뿐더러 예술가들은 항상 최신 도구와 물질, 즉 새로운 매체를 활용해왔다는 점에서 이 용어는 꽤 모순적이며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을 상징한다는 말은 결국 아무것도 상징하지 못한다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디지털 시대는 예술작품의 창조, 유통, 판매, 지원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며 이 세상이 끝없이 이어지는 관계 사회로 변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요즘에는 집에서도 편하게 클릭 몇 번만으로 예술작품의 이미지와 정보를 접할 수 있으며, 한편 예술가들은 크라우드 소싱(대중Crowd과 아웃소싱Outsourcing의 합성어로 대중들의 참여를 통해 솔루션을 얻는 방법. 자금이 없는 예술가나 사회활동가 등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익명의 다수에게 투자를 받는 크라우드 펀딩도 여기에 속한다)을 통해 프로젝트 비용을 해결할 수 있고 갤러리스트의 도움 없이도 온라인에서 대중에게 직접 작품을 팔 수 있다. 과학기술이 사람, 시간, 지형의 관계를 급진적으로 바꾸어 놓은 이 시대에 진정 현대적인 예술이라면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야만 한다. 사실 새로운 매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여 지금의 복잡한 시대상을 드러내는 것만큼 경쟁력 있는 예술 방법이 또 있을까?
- 1989년 월드 와이드 웹의 탄생은 인종과 성별을 넘어 존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새 시대를 예고했다. 이 새로운 사이버 공간은 매우 빠르게 성장해 초기 ‘넷 아트Net Art’가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예술가들은 미술 시장과 갤러리의 유통 구조에 의존하지 않는 작품을 온라인에 만들었고, 인터넷상에서 생산과 관람이 모두 가능한 이 작품을 관객들은 집과 사무실에서 접할 수 있게 됐다.
- <금속공예Metalwork>(1793~1880)라는 제목 아래에는 은으로 만든 화려한 다기 세트와 함께 같은 시기에 제작된 노예용 쇠사슬을 함께 전시했다. 찻잔 세트는 이전부터 ‘은 식기류Silverware’ 부문에 전시되어 있었지만, 쇠고랑은 전혀 전시된 적이 없던 물건이었다. 그런 것들은 박물관이 말하는 역사의 일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윌슨은 물건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우리의 분류 시스템이 불편한 진실을 숨길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역사는 결코 단지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정확히 보여주었다.
- <보안된 풍경Guarded View>(1991)은 머리가 없는 검은색 마네킹을 설치한 작품으로, 마네킹은 뉴욕에서 제일 잘나가는 미술관 네 곳의 보안요원 유니폼을 입고 있다. 대개 보안요원은 사람들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보이지 않게’ 교육을 받지만, 이 얼굴 없는 보안요원 상은 전시장 앞 정면에 설치됐다. 윌슨은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실제 내가 미술관에서 일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작업이에요. 나는 몇 년 동안 미술관으로 출근하면서 나와 다른 보안요원들, 그리고 식당 종업원, 건물 관리인 모두가 미술관에서 일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혹은 유색인종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반면에 미술관에 전시하고 소장할 작품을 선택하는 일, 작품을 어떤 식으로 묘사하고 의논할지 방법을 결정하는 일, 그러니까 전문 직종에는 우리 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더군요.” 이 작업으로 윌슨은 미술관,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 구조(이 경우에는 계층과 인종 둘 다)에 주의를 환기했다.
- 미술사를 새로 쓰기 위한 노력의 중심에는 ‘이 미술사는 누구의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이 존재한다.
- 지금까지는 다른 문화에 비해 유럽 문화를 특별 우대하는 유럽 중심의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다면, 현재 유행하는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 또는 ‘글로벌 미술사’ 같은 용어들은 서구 중심의 편향된 미술 동향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 현재 미술계는 배타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거나 할당된 인원을 채우기 위해 그저 형식적으로 여성 또는 유색인종 예술가를 포함시킨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주변화한 다양한 소수 그룹의 각기 다른 투쟁의 역사는 무시한 채 다문화주의라는 이름으로 함께 뭉뚱그리는 행위도 똑같이 문제다. 이런 과정은 옳은 길로 가는 첫걸음이지만 우리 전체가 함께 나아갈 역사에 대해 진심으로 다시 생각하지 않는다면 잊힌 인물과 운동들을 부활시키는 작업만으로는 절대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 1989년, 자신들을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라고 부르는 익명의 여성 예술가 한 무리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가운데 여성 누드와 남성 누드의 비율을 계산하며 ‘고추 숫자 세기’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전체 작품 가운데 여성 작가의 작품은 겨우 삼 퍼센트 미만이지만, 누드 작품의 팔십삼 퍼센트는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수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여성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벌거벗어야 하는가?”
- 그룹은 1984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현대 회화 및 조각에 대한 국제적 개관An International Survey of Recent Painting and Sculpture’전시에 반발하며 처음 결성되었다. 그 전시는 뉴욕 현대미술관이 새롭게 확장 공사를 마친 후 열린 첫 공식 행사로,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 작품과 예술가에 대해 점검해 보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그런데 전시에 참여한 백육십구 명의 예술가 가운데 여성은 열세 명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성 예술가들은 이에 항의하며 미술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때 이후로 게릴라 걸스는 미술계 내의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기 위해 시위 활동을 조직하고 도발적이면서도 재미있는 포스터, 스티커, 게시판 등을 제작하면서 독특한 형태의 예술운동을 다양하게 펼쳐나갔다.
- 개념 미술은 주로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 사이에 미국, 유럽, 라틴아메리카의 예술가들이 ‘완성된 오브제는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전제로 실험했던 미술 사조를 일컫는다.
- 이 시기를 가장 잘 대표하는 작가인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는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One and Three Chairs>(1965)라는 작품을 통해 하나의 ‘의자’를 일반적인 의자, 의자를 찍은 사진, 그리고 의자의 사전적 정의, 이렇게 세 가지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는 사물, 이미지, 언어를 사용해 의자의 의미를 동등하게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는데, 이 작업을 통해 아이디어가 상징하는 사물과 별개로 독립해 존재할 수 있다는 점과 하나의 의미가 여러 다른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 간단한 아이디어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이런 급진적인 개념과 함께 기존의 예술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었던 미의 기준, 숙련된 솜씨, 시장성 등의 중요성도 많이 감소하게 됐다.
- 1968년 솔 르윗은 다른 사람이 보고 따라 할 수 있게 지시문과 설계도로만 이루어진 ‘벽 드로잉’이라는 시리즈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누가 언제 어디서라도 주어진 지시문에 따라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참여한 사람에 따라, 그림을 그린 공간에 따라 결과물의 형태가 달라진다. 오노 요코Yoko Ono의 지시문에 따라 그려진 회화 시리즈 중 하나인, <스노우 피스Snow Piece>(1963) 같은 작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눈이 온다고 생각해 봐요. 눈이 사방에서 계속 내리고 있어요.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눈이 오는 거예요. 그 사람이 눈에 덮였다고 생각될 때 대화를 멈추세요.” 그녀는 물리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지만 그 과정을 관람객의 손에 맡겼다. 그리고 관람객의 마음속에 자기 생각이 연상되게 하는 과정을 거쳐 의미가 존재하도록 만들었다.
- 예술이 반드시 무언가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이런 생각은 음악에서부터 광고에 이르기까지 다른 분야에서도 여러 가능성을 여는 역할을 했으며, 개념 미술은 회화나 조각과 동등한 장르로 인정받게 되었다.
-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개념 미술의 기본 정신은 어떤 형태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마르셀 뒤샹의 위대한 발상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 터너상을 받은 영국 작가 마틴 크리드Martin Creed의 <작품 No.227: 계속해서 켜졌다 꺼졌다 하는 조명Work No.227:The lights going on and off>(2000) 같은 현대적인 개념 미술 작업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제목이 알려주듯이 이 작품은 전시장 안의 조명이 5초간 켜졌다가 꺼지기를 영원히 반복하는 식이다. 본질적으로 이 작업에는 어떤 내용물도 없다. 작가는 무엇도 더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공간에 간단한 설비만 갖추어 관객의 관람을 방해한다. 크리드는 이 작업은 ‘세상에 잉여물을 만들어 내는 일’ 없이 예술 활동을 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바람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간단한 행동만으로 관람객들은 텅 빈 전시장에 대해, 그리고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어떤 실마리를 찾으려 애쓰며 거기 서 있는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 결국, 전시장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면 이런 상황은 그저 전기 회로의 고장으로 생긴 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 2016년 마리아 아이히호른Maria Eichhorn이라는 작가의 <5주, 25일, 175시간5weeks, 25days, 175hours>(2016)이라는 작품은 대중과 언론계를 또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런던 치즌헤일 갤러리Chisenhale Gallery에서 열린 전시에서 작가는 전시장 문을 닫고 갤러리 직원 모두에게 유급 휴가를 주어 전시 기간 동안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했다. 그 기간에 직원들은 매주 수요일 한 번호를 제외하고는 전화도 받지 않았고, 이메일도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 아이히호른은 《아트포럼》과의 인터뷰에서 “갤러리 자체와 실제 전시는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공공 영역과 사회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갤러리 직원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도 사실은 일하는 시간이라는 설명이었다. 노동 시간과 취미 시간이 점점 더 구분하기 어렵게 서로 얽히고 있지만 좀처럼 멈춰 서서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에 어떤 가치를 두며 살고 있냐고 작가는 묻고 있다.
- “아이디어만으로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 쿠바 태생의 미국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는 1990년에서 1993년까지 ‘캔디 스필스candy spills’로 알려진 무제 작품 19점을 전시했다. 각 작품의 재료는 수백 개의 사탕, 초콜릿으로 작가는 전시장 구석에 이 재료를 쌓아놓거나 바닥의 정해진 구역에 고루 깔았다. 그렇게 하라는 노골적인 지시문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관람객들이 원한다면 마음껏 사탕을 가져가도록 했다. 어떤 경우에는 주최 측에서 작품 형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줄어든 양만큼 사탕을 다시 채워 넣기도 했다. 사탕이 줄어들었다가 다시 채워지는 과정을 통해 ‘캔디 스필스’는 영구적으로 상태가 변화하는 인터랙티브 조각이 되었다.
- 이 작업은 ‘고정된 형태와 한결같은 성질을 지닌 조각품을 만드는 대신에 사라지고 변화하며 불안정하고 깨지기 쉬운 형상을 만들려고’ 노력한 결과였다.
- ‘캔디 스필스’시리즈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무제Untitled’(L.A.의 로스의 초상Portrait of Ross in L.A.)(1991)는 여러 색상의 포장지로 싼 사탕 175파운드(약 80킬로그램)를 전시장 구석에 수북이 쌓아둔 것으로, 1991년 에이즈로 죽은 작가의 동성 연인, 로스 레이콕을 추모하는 서정시 같은 작품이다. 여기서 사탕의 무게는 건강한 사람의 일반적인 몸무게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관람객이 가져가는 사탕은 죽기 전 레이콕의 체중 감소를 확인하고 상기시키는 물리적인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숨겨진 의미를 알든 모르든 이 전시를 찾은 관람객은 환자가 겪은 고통을 기록하고 그를 기억하는 집단의식에 참여하게 된다. 또한 예술작품을 통해 공유된 경험은 그들 마음속에 깊은 유대감을 불러오게 한다. 이 작업은 매우 가슴 아프고도 개인적인 추도식인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에 대한 개념적 선언이기도 하다.
- ‘큐레이터’ 또는 ‘큐레이터십’의 기본 개념은 본래 미술관 또는 도서관의 소장품을 관리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17세기에 처음 생겼다.
- 대규모 미술관이든 소규모의 독립 전시 공간이든 단기 전시를 기획하는 핵심 과정은 전반적으로 비슷하다. 큐레이터가 먼저 전시 콘셉트를 제안하면 관련 작품과 작가에 대한 연구·조사가 시작되는 식이다. 작품 선정, 작품 대여 계약의 체결, 전시장 벽면의 색상 결정, 텍스트, 작품의 위치를 결정하는 일에서부터 전시 도록, 작품 운송, 보험까지 이 모든 일을 총괄하는 게 큐레이터의 역할이다. 때로는 전시팀이 전시 하나를 오픈하는 데 3~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 큐레이터는 전시를 운영하고 관리할 뿐만 아니라 기금 모금, 예산 집행, 전시 연출, 협상에 이르는 모든 역할을 맡는다.
- 미술관이 사람들에게 예술에 대한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면 예술작품의 저장고보다는 창조 활동의 중개인으로 기능할 때 그 목표에 가장 잘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 현대미술에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이런 재미있는 작품도 있다. 특히나 엄숙하고 위축될 수 있는 공간에서 예술작품 위를 마음껏 뛰어다니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무척이나 즐겁고 힘을 얻은 기분이 들 것이다. 예술가와 미술관은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사람들이 살아있다고 느끼는 소재를 활용하려고 무척 애쓰는데, 이런 노력 덕분에 미술계 현안의 우선 순위에서 재미 요소는 점점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하지만 사람들이 재미있는 작품에만 열광하며 페이스북에 올릴 환상적인 프로필 사진을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릴수록 그런 작품들은 대중을 즐겁게 하는 데만 몰두하는 아동 친화적인 작품이라는 비난 역시 점점 거세지고 있다. 또한 볼만한 구경거리에 굶주린 언론에 영합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흥분한 관객과 늘어난 방문객의 수치만 강조한다면 작품의 깊이는 결여된 채 즉시 이해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 같은 예술만 유행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비평가들은 이렇게 사람들의 감정을 즉시 불러일으키는(사람들이 ‘와우’하고 소리치게 만드는 요소를 가진) 예술작품은 관객이나 작가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 이런 작품을 접한 관객은 단순히 일요일 오후를 즐겁게 보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영감을 발견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여하튼 재미를 추구하는 예술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현대미술을 누릴 수 있도록 스스로 빗장을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미술계의 다급함 때문이 아닐까. 또 여섯 살짜리 아이에게 미술관이 반드시 지루한 곳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 비록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구입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소장품은 컬렉터만의 독특한 취향이 드러난다.
- 런던 테이트Tate Gallery가 주최하는 터너상Turner Prize은 아마도 가장 악명 높은 미술상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영국 언론에 집중 보도를 받으며 진행되는 이 상은 1984년에 처음 제정되었고 현재는 미술계에서 가장 말 많은 행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상의 이름은 산업 혁명기에 활동했던 유명한 영국 화가 J. M. W. 터너J. M. W. Turner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미술계에 주목할 만한 공헌을 한 오십 세 이하의 영국 출신 또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에게 수상한다. 25,000파운드(약 3,700만 원)의 상금은 수상자 한 명에게만 주어지지만, 전시에는 최종 후보로 지명된 네 명의 예술가가 모두 참여한다. 영국 국민 모두가 현대미술을 향유하도록 만들겠다는 이 상의 취지에 따라 전시는 한 해는 테이트 브리튼에서, 한 해는 런던 외 다른 지역에서 번갈아가며 진행한다.
- L
-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
- 그레이슨 페리Grayson Perry
- 새로운 예술작품이 처음 시장에 진입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갤러리를 통해 이루어지며, 갤러리는 작가를 ‘대표’해 작품의 판매를 담당한다.
- ‘플립핑Flipping’
- 플립핑은 단기 차익을 목적으로 작품을 샀다가 상당히 비싼 가격에 곧바로 팔아버리는 투기 거래를 말한다. 2차 시장, 즉 이전에 최소 한 번이라도 팔린 적이 있는 작품을 거래하는 시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급작스러운 가격 상승만큼 급작스러운 가격 하락이 일어날 수도 있어 작가에게 피해를 주고 작품 시장을 불안정하게 한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작가의 경력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작가가 눈에 띄게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면 더더욱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갤러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투기로부터 작가를 보호하고 신뢰할 수 있는 가치 개념을 정립시켜 작가가 성장함에 따라 작품 가격도 꾸준히 오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아울러 잠재 구매자가 작품 수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갤러리는 컬렉터에게 다른 갤러리에서 작품을 산 경험이 있는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무엇인지 묻는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컬렉터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한 후에 작품을 금세 되팔지 않을만한 사람에게만 작품을 판매해야 한다.
- 세간의 이목이 쏠린 주요 미술품 경매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낙찰가로 작품이 팔리는 것은 경매 수수료buyer’s premium가 붙은 결과이기도 하다. 경매 회사는 보통 낙찰가의 십 퍼센트에서 이십 퍼센트 정도의 수수료를 부과하는데, 경매 회사와 작품이 팔린 가격에 따라 수수료 액수가 달라진다. 경매 회사는 경매 수수료 외에 위탁 수수료seller’s commission도 받는다. 엄청난 낙찰 총액을 보고 경매 회사가 돈 속에서 헤엄을 치는 듯한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경매 회사로서도 제대로 경매를 진행하기 위해 때로는 위험부담을 감수하기도 하고, 발품 파는 일도 마다치 않으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 경매 회사는 특별히 중요한 작품을 경매에 내놓기 위해 작품의 낙찰 여부와 관계없이 위탁자에게 개런티Guarantee 금액을 약속하기도 하는데, 경기가 좋지 않은 시기에는 매우 위험한 전략일 수 있다. 그리고 경매 회사마다 고객을 관리하는 전담팀을 두고, 큰손 고객을 모시기 위해 수년간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고객관리 전담팀은 작품 판매와 관련해 고객의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하고, 곧 있을 다음 경매에 응찰하도록 고객들을 설득한다.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에 갤러리 소유주가 갤러리 대표 작가의 작품에 입찰하는 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경쟁을 붙여 작품 가격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시장 가격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
- 크리스티Christie’s
- 소더비Sotheby’s
- 데미언 허스트는 분명 예술가인 동시에 사업가이다. 작품 판매 외에도 ‘아더 크리테리아Other Criteria’라는 아트숍을 운영해 프린트나 티셔츠 같은 브랜드 상품을 판매한 수익이 1년에 1,200만 달러(약 134억 원)가 넘는다.
-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브랜드로 출판, 음악 매니지먼트, 텔레비전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사업을 진행했다. 앤디 워홀이 ‘예술의 뒤를 잇는 단계’로서 구상한 곳으로 유명한 스튜디오 팩토리the Factory에서는 다양한 아트 상품을 제작했다. 워홀은 모험적인 사업을 새로 벌이며 자신만의 매체를 계속 확장했고 그 과정에서 대중적인 성공도 재확인했다.
- 앤디 워홀은 “돈을 버는 일이 예술이고 일이 곧 예술이며, 좋은 비즈니스는 곧 최고의 예술이다.”
- 현대미술가 겸 사업가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사람은 바로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이다. 그가 운영하는 카이카이 키키 주식회사Kaikai Kiki Co., Ltd.는 수백 명의 예술가를 조수로 고용해 다양한 아트 상품뿐 아니라 순수 미술품도 디자인하고 제작한다. 그는 백만장자나 살 수 있는 그림과 조각 작품도 만들지만 자신의 가장 유명한 작품을 사탕과 함께 포장한 ‘스낵 토이’ 같은 수집할 수 있는 상품도 제작해 일반인들도 자신의 예술적 취향을 즐길 수 있게 했다. 그리고 프랑스 명품 패션브랜드 루이뷔통Louis Vuitton과의 공동 작업에서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색상의 모노그램과 웃는 얼굴의 벚꽃 문양을 디자인해서 이탈리아에서 태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패셔니스타의 핸드백을 장식했다. 그 인연은 2008년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Los Angeles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 열린 무라카미의 개인전까지 이어져 루이뷔통은 미술관에 매장을 통째로 들여와 운영하기도 했다.
- 가고시안Gagosian
- 하우저앤워스sHauser & Wirth
- 현대미술을 다루는 갤러리는 대개 생존 작가를 ‘대표’하기 위해 전속 계약을 맺고, 그들이 경력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미술계의 전속 계약 방식은 음악 산업에서 진행하는 방식과 거의 비슷하다. 갤러리는 정해진 지역 내에서 작품을 판매하고 홍보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갖고, 그 대가로 작품 판매액의 일부를 작가에게 돌려준다. 이 말은 곧 예술가 중에는 아시아 지역에서 하나, 유럽 지역에서 하나, 이런 식으로 한 곳 이상의 갤러리와 계약을 맺는 작가도 있다는 뜻이다. 갤러리는 계속 이어지는 전시 일정에 작가를 참여시키고, 작가는 일정 기간에 한 번씩 새 작품을 전시한다. 대부분의 갤러리는 일 년에 여섯 개에서 여덟 개의 전시회를 진행하는데 최소 두 달에 한 번꼴로 새로운 전시회가 시작된다.
- 작가는 갤러리가 팔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갤러리는 그 작품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전시해서 판매해야 한다. 미술관과 달리 갤러리는 공공자금으로 운영되지도 않고, 전시 입장료도 거의 받지 않아 오로지 작품 판매 수익으로만 먹고 산다. 갤러리는 대개 판매 수익, 즉 할인 금액과 세금을 뺀 나머지 금액의 절반을 가져가고 작품 제작비용을 작가에게 되돌려준다.
- 작가에게 작품 판매 수익의 절반밖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불공평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작가가 작품 제작비 외에 작업실 임대료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런데도 작가들은 정말 갤러리와 함께 작업할 필요가 있을까? 대답은 ‘예스’이다. 대개 갤러리는 가장 좋은 위치에 전시장을 임대하고, 정기적으로 작가들의 개인전을 진행하느라 많은 돈을 쓴다. 그리고 전시마다 공을 들여 오프닝 이벤트, 언론 홍보 활동을 하고 타깃 고객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진행한다. 또한, 컬렉터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예약도 없이 불쑥 찾아온 고객이 작품을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컬렉터의 호불호를 파악하고 신뢰를 쌓기 위해 수없이 많은 이메일을 주고받고, 사진과 포트폴리오를 보내고,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기나긴 노력의 과정을 거쳐야만 작품 판매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누군가가 수천 달러의 돈을 지불할 때는 구매하는 물건과 파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 아트페어는 갤러리가 새로운 고객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다.
- 갤러리가 하는 역할을 작가가 직접 하기에는 경제적 여건도 안 될뿐더러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다. 갤러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작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기 위해서다. 작가를 대신해 기록과 자료를 모아 보관하고 문의 사항을 처리해주고 언론 보도를 확보하는 등 제반 관리 업무를 도와주어 작가가 예술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준다.
- 아트바젤Art Basel
- 매년 6월에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아트바젤은 다른 아트페어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중요한 미술계 행사로 1970년에 처음 개최되었다. 아트바젤의 본격적인 전시 준비는 행사 9개월 전에 참가신청을 받으며 시작되고, 갤러리는 전시에 출품할 작품을 자세히 기록해 신청서를 제출한다. 전시에 참가하는 갤러리가 삼백 곳이 넘다 보니 혼란을 덜기 위해 구역을 몇 군데로 나눠 진행하는데, 유명 블루칩 갤러리들이 참여하는 ‘갤러리Galleries’, 신생 갤러리들이 젊은 작가 한 명을 선정해 작품을 선보이는 ‘스테이트먼츠Statements’, 그리고 규모가 큰 실험적인 작품을 전시하는 ‘언리미티드Unlimited’로 구분된다.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참가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갤러리는 자신의 능력에 가장 적합한 분야에 지원하며, 그동안 아껴두었던 가장 좋은 작품을 골라 전시에 참여한다.
- 행사 기간 중 처음 3일은 초대받은 VIP로만 입장을 엄격하게 통제하며 VIP 중에서도 단계를 구분해 입장시킨다. 유명 컬렉터와 큐레이터가 제일 먼저 전시장에 들어가 원하는 작품을 고르고, 몇 시간 뒤에 다음 단계의 VIP 입장을 허용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일반 관람객은 실제 행사가 개막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전시를 즐길 수 있다. 갤러리로서는 처음 며칠, 몇 시간이 성공적인 판매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순간이기 때문에 세일즈팀은 가격 리스트와 샴페인을 준비하고 전시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 현재 아트바젤은 3월 홍콩 전시와 12월 미국 마이애미비치 전시가 추가되어 사실상 1년에 세 번의 행사를 치르고 있다.
- 1863년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는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와 함께 앉아 있는 벌거벗은 여자를 그려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19세기 후반 인상파 화가들은 흐릿한 풍경화로 비평가들을 분노하게 했다. 또 뒤샹이 전시했던 남성용 소변기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사실 근대미술의 특징이기도 한 전통을 거스르는 정신은 오늘날 많은 현대미술가의 실험 작업에도 고집스럽게 남아 있다.
- 작은 칸막이 공간 안, 전시장 바닥에 투사된 화면으로 보여주는 모나 하툼Mona Hatoum의 작품 <이물질Corps etranger(foreign body)>(1994)에는 초소형 의료용 카메라가 작가의 몸의 윤곽을 따라가며 찍은 장면이 담겨있다. 그리고 잠시 후,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카메라는 목구멍 아래로, 그리고 질과 항문을 지나 위로 움직이며 작가의 몸속을 탐색한다. 그런 장면은 매우 흥미로운 동시에 묘한 불쾌감을 자아낸다. 그녀의 내장을 따라가는 이 여행은 한편으로는 매우 객관적이면서 불편하고, 또 한편으로는 놀랍도록 개인적이고 은밀하다.
-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관객에게 ‘물리적 성질을 지닌 우리의 참모습’을 억지로 마주하게 하는 초상화로서 피, 창자, 그런 모든 것들을 이용해 ‘물리적 경험이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도록’ 만들었다.
- 파격적인 이 작품이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유는 바로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역겨움에 있다.
- 여전히 중요한 점은 충격이 보는 이의 감정을 건드렸다는 것, 그리고 예술가들이 그 점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물질>의 경우, 작품에서 사용된 충격이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으로 계속 마음에 남아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작품 <그Him>(2001)가 주는 충격은 방식이 조금 다르다. 밀랍으로 진짜 사람처럼 만든 그 조각품은 뒤에서 보면 무릎 꿇고 기도하는 한 아이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앞에서 보면 사실 아돌프 히틀러를 축소해놓은 모형이다. 이 작품은 역사적 충격, 다시 말해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쓰라린 상처로 남아있는 기억을 이용했다. 어떤 사람은 그 조각품에 악의 본성에 대한 탐구와 함께 인류애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 같다고 말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쓸데없는 도발 행위라고 말하기도 한다.
- 이런 작품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어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게 하고, 사람들의 편견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안전 구역 밖으로 데려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의 끝이 어디인지 보여준다. 예술가들은 그 경계를 실험함으로써 문화가 작동되는 원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새롭게 이해하라고 자극한다. 하지만 기도하는 히틀러 같은 작품에서 우리는 정말 뭔가를 배울 수 있을까? 채프먼 형제the Chapman Brothers(전쟁, 대량학살, 섹스, 죽음과 같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주제로 엽기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영국 미술가 그룹)가 만든, 얼굴에 생식기가 달린 어린이 마네킹은 정말 필요한 작업인가? 그리고 팔에 인공 귀를 이식해 자라게 한 예술가 스텔락Stelarc(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의 몸과 기계장치를 결합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행위예술가)의 행동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충격은 그런 질문을 다룰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일단 처음의 충격이 조금 가시고 나면 정말 주목할 가치가 있는 느낌은 그다음에 온다.
- 스페인 작가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는 창녀, 마약 중독자, 불법 이민자, 노숙자, 무직자와 같이 사회로부터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고용해 아무 의미도 없고 때로는 수치스러운 작업을 수행하게 하여 이를 작품으로 만들어 유명해졌다. <고용된 여섯 사람의 등에 문신으로 새겨진 250cm의 선250CM LINE TATTOOED ON THE BACKS OF 6 PAID PEOPLE>의 작업을 위해 작가는 무직자 여섯 명에게 각각 30달러(당시 현지 노동자 일당과 같은 값)를 주고 등에 영구적인 문신을 새겨 하나의 긴 선을 만들었다. 1년 후에는 마약에 중독된 매춘부 네 명에게 헤로인 주사 한 대 값의 돈을 주고 같은 작업을 했다. 시에라는 사람의 몸을 사용하기 위해 무직자를 고용하고, 마약 중독자에게 헤로인 살 돈을 주면서 비윤리적이라고 할 만한 방식의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이렇게 만든 작업을 작품으로 전시하고 미술관이라는 무대에 선보이고 판매하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미술계 또한 이 작업에 연루되었음을 시사한다. 때로 이런 작업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2000년, 시에라는 미술관 보안요원을 고용해 뉴욕 MoMA P.S.1 미술관 벽 뒤에서 삼백육십 시간을 살게 했는데, 나중에 그 보안요원은 “사람들의 관심을 그토록 많이 받아본 것도 처음이고 예전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작가가 퍼포머로 선택한 이들은 사회적·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 일자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간 마음이 불편해지는 게 아니다. 그는 착취를 구경거리의 형태로 바꾸어 놓았다. 그렇게 해서 작가는 자신의 개입과 상관없이 이러한 착취 관계는 늘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뒤로 따라오는 힘의 역학 관계와 애매한 도덕 체계는 자본주의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결국,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단지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뿐.
- 2013년 7월 10일, 래퍼이자 힙합계의 거물 제이지Jay Z는 뉴욕 첼시의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에 관객들을 초대해 비공개 공연을 했다. 새 앨범의 수록곡 ‘피카소 베이비Picasso Baby’를 처음 선보인 그 자리에서 그는 여섯 시간짜리의 특별한 퍼포먼스를 공개했는데,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에서 영감을 얻어 계획된 이벤트였다.
- 3년 전 아브라모비치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전시 기간 내내, 모두 합쳐 칠백 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 맞은편 관객을 일대일로 대면하는 <예술가가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관객 개개인과 말 없는 대화를 나눔으로써 사람과 사람 간의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려는 의도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제이지는 이 작품에 대한 오마주로 TV 스타, 팬, 미술계 유명 인사들을 모아놓고(아브라모비치도 직접 참석했다!)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차례로 공연을 보여주었다.
- 세계적인 슈퍼스타이자 뮤지션 레이디가가Lady Gaga는 ‘아트팝ARTPOP’이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발표했다. 표지 작업에는 제프 쿤스가 참여했고 앨범 투어 공연은 ‘아트레이브ArtRave’라고 부른다. 또한, 레이디가가는 ‘어플라우즈Applause’라는 곡의 가사이기도 한 다음의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팝 문화는 예술 속에 있어, 이제 예술은 팝 문화 속에 있고, 내 안에 있지!’
- 미술평론가 제리 살츠Jerry Saltz가 2016년에 제임스 프랭코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 “미술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원입대한 군인이나 다름없이 모두 맨몸으로 이곳에 들어옵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욕구를 지니고 있죠. 다른 걸 선택할 수도 없고, 그럴 여지도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어떤가요? 배출구가 이렇게나 많은데도 계속 이곳에 들어오려고 하는군요. 당신이 유명인이 아니었대도 작품이 이렇게 화제가 되었을까요?”
-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 미술관 및 박물관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가 과거의 문화 업적을 수집·보존·전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현대미술관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실질적인 관점에서 그 말은 현대미술관이 현재 순간을 대표하는 시각 문화를 정확히 포착해내어 미래에 어떤 작품이 역사적 중요성을 띠게 될지 효과적으로 예측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미술관의 승인을 받은 현대미술 작품은 미래에 박물관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역사에 기록될 가치가 있다는 확인을 받은 셈이다.
- 미술관의 권위에 대한 확신은 공공 미술관과 박물관이 공유된 역사를 수호하는 관리자 역할을 한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미술관이 전시하고 보관하는 작품은 사람들의 이야기, 투쟁, 업적을 반영하고 그 중심에는 대중의 이해가 자리한다. 이들은 국가의 자원인 동시에 지역 사회에 대한 긍지와 다음 세대에 전승할 유산을 형성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공공 미술관은 주로 정부지원금으로 운영되므로 이런 사회적 책임을 충족시키고 있는지 증명해야 하고, 이사회와 관계 당국에 운영 과정과 결과를 보고할 의무가 있다. 또한, 미술관 소장품은 기본 원칙에 따라 선정돼야 하며 큐레이터 또는 선정위원의 단순한 개인적 취향을 뛰어넘어 이상을 상징하는 작품이어야 한다.
- 작품을 수집하는 이유는 전시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각각의 소장품은 고유의 작품 수집 전략과 수집 정책에 따라 결정되며, 이는 미술관의 전반적인 미션과 정체성에 따라 조정된다.
- 대부분의 미술관이 엄격한 규칙을 마련해 두는데, 가장 중요한 내용은 작품 매각으로 발생한 수익금은 다른 미술품을 구입하는 데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작품 취득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 구매와 기증이 가장 일반적이며 작품 구매는 별도로 조직된 심의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 레스보스섬
- 베를린을 기점으로 활동 중인 영상작가이자 저술가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이 제작한 <미술관은 전쟁터인가?Is the Museum a Battlefield?>라는 영상물은 2014년 이스탄불 비엔날레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쿠르드족 독립투사인 자신의 친구를 죽게 한 탄피의 기원을 추적하는 내용의 렉처 퍼포먼스lecture performance(강연 형식과 결합한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삼십여 분간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터키 당국이 사용한 무기가 비엔날레 협찬사 가운데 한 회사의 자회사에서 제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전쟁과 미술관의 복잡하게 얽힌 상관성이 드러난다. 특히나 몇 달 전 이스탄불에서 벌어진 시위로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비엔날레가 개최된 점을 고려하면 이 작품은 관객에게 더욱 신랄하게 다가갔을 것이다.
- 2009년 독일 뮌헨의 하우스데어쿤스트Haus der Kunst에서 전시한 <기억하기Remembering>는 9,000개의 책가방을 이어 만든 설치작품으로,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당시 허술하게 지어진 학교 건물이 붕괴하면서 목숨을 잃은 9,000명의 아이들을 상징한다.
- 2014년 쿠바 출신 예술가 타니아 브루게라Tania Bruguera의 감금 소식이 국제 뉴스의 일면을 장식했다. 쿠바 정부는 그녀를 체포하고 혁명 광장Plaza de la Revolucion에서 진행되던 <타틀린의 속삭임Tatlin’s Whisper> 퍼포먼스를 중단시켰다. 본래 2009년 제10회 아바나 비엔날레Havana Biennial에서 처음 선보였던 문제의 작품은 관객에게 빈 연단에 올라 어떤 사전검열 없이 일 분간 연설할 기회를 주고, 시간이 지나면 군복을 입은 두 사람에게 호위를 받으며 내려가는 퍼포먼스였다. 연단에 선 사람들의 어깨 위에는 흰 비둘기 한 마리가 놓였는데,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가 1959년 혁명을 승리로 이끈 뒤 아바나에서 첫 연설을 하는 동안 그의 어깨에 앉아있던 비둘기를 암시하는 장치였다. 모든 것을 엄격하게 검열하는 정세 속에서 이 작업은 잠시나마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었다. 어떤 이는 침착하게 자기 생각을 이어갔고 어떤 이는 고함을 쳤으며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도 있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2014년에 이 작업을 다시 무대에 올린 이유는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 쿠바 시민들이 국가와 국가의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평화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작품이 본래의 예술적 맥락에서 지니는 한계를 벗어나 공공장소로 자리를 옮기자 쿠바 정부는 이를 억압해야 할 위협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 뉴욕 퍼포먼스 아트 페스티벌 퍼포마Performa를 창설한 로즐리 골드버그Roselee Goldberg는 묻는다. ‘“나를 봐요. 여기 당신 앞에 서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는 더 좋은 방법이 또 있나요?’ 사람의 몸이 곧 매체가 되어 무대 중앙에 서기 때문에 퍼포먼스 아트는 성, 인종과 관련된 주제뿐 아니라 우리가 자신, 그리고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연구하는 유용한 도구로도 사용된다.
- 퍼포먼스 아트가 예술가의 몸,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한 자각을 증대시켜 강조하려고 하는 주제는 바로 이런 신체의 물리적 특성이다.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 그녀의 초기작이자 가장 잘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인 <리듬 ORhythm 0>(1974)에서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을 ‘사물’이라고 선언하고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몸을 온전히 내맡겼다. 탁자 위에는 장미 한 송이, 깃털, 펜, 꿀, 톱, 가위, 채찍, 그리고 심지어 총알이 든 권총까지 각기 다른 일흔두 개의 사물을 늘어놓고 사람들에게 그중 아무것이나 골라 원하는 대로 자신의 몸에 사용하게 했다. 단순히 구경만 하던 수동적 관객에서 퍼포먼스의 협력자가 된 사람들은 그녀를 칼로 베고 상처를 내는가 하면 옷을 벗기거나 심지어 장전된 총으로 머리를 겨누기도 했다. 반면에 눈물을 닦아주며 그녀를 보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모비치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여섯 시간이 지나 작가의 안전을 염려해 퍼포먼스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관람객이었다. 이 작업을 통해 사람들의 사회적 얼굴 이면에 숨겨진 공격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또 한편 그런 폭력성을 이기는 따뜻한 마음도 증명되었다.
- 앤디 워홀의 수프 캔 작품을 소장한 한 컬렉터가 캔에서 떨어진 라벨을 어떻게 하면 다시 제대로 붙일 수 있는지 뉴욕 현대미술관에 조언을 요청하자, 미술관 보존수복팀장은 직접 수프 회사에 전화를 걸어 처음 통조림을 생산했던 시기에 라벨에 사용한 접착제의 종류를 먼저 확인했다.
- 가르다이아
- 쿠스쿠스(좁쌀 모양의 북아프리카 음식)
- 사실 모든 예술작품이 후세에 길이 남기려는 의도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때로는 작품을 보존하려는 욕구와 세월의 흔적이 작품에 그대로 남기를 원하는 작가의 바람이 상충하기도 한다.
- 예술작품을 제외하고는 시각적으로 주의를 흩트릴만한 모든 사물이 제거된 공간, 삭막할 만큼 텅 빈 ‘화이트 큐브white cube’는 전시장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기준이 되어버려 이제는 딱히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이다. 무엇이든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시대에서 오브제에 예술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조건이 바로 이 화이트 큐브인 것이다.
- 이런 전시 체계의 역사는 뉴욕 현대미술관이 창설되던 192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에는 ‘살롱 스타일’(때로 천장에 닿을 정도의 높이까지 여러 작품을 다닥다닥 위아래로 거는) 전시 방식이 관행이었지만, 이때부터는 그림을 사람 눈높이에 한 줄로 드문드문 걸었다. 관람객이 한 번에 한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치해 순수한 미적 고찰을 최대화시키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곧 전시장에서 창문도 사라졌는데 바깥세상, 매일 반복되는 일상, 시간이 흐르는 모습까지 모두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약 50년 후에는 화이트 큐브에 대응하는, 필름과 비디오를 위한 공간이 ‘블랙박스black box’의 형태로 진화했다. 이처럼 바깥 세계로부터 물러나 침잠한 듯한 분위기 때문에 미술관은 분리된 사색의 공간, 그리고 더 높은 이상을 통해 개인과 집단을 변화시키는 상징의 공간으로 떠오르게 됐다.
- 현대미술관의 디자인이 워낙 기이한 형태를 이루다 보니 작품보다 오히려 건물이 주목을 받아서 작품 감상을 방해한다고 불평하는 비평가도 많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 북부의 도시 빌바오Bilbao를 찾는 방문객 대부분이 무엇보다 우선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반짝이는 티타늄 구조물을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 미술관이 지역 경제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결과, 도시 경제와 국제적 위상을 변화시키는 예술기관의 힘을 일컬어 ‘빌바오 효과’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한 도시를 국제적 관광지, 문화적 명소로 바꿔 놓은 이런 사례 덕분에 현대미술관은 대규모 도시 건축과 투자를 위한 구실로 종종 이용되기도 한다.
- 사디야트 문화지구Saadiyat Island’s Cultural District
- 아부다비 관광청이 280억 달러(약 31조 4,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진행 중인 이 예술지구의 공사가 마냥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국제인권감시단Human Rights Watch이 2009년에서 2015년까지 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해 공사를 진행했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많은 작가들과 미술계 인물들도 아랍에미리트 정부에 노동법과 노동정책을 개선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 섬의 이름이 아랍어로 ‘행복의 섬’이라는 뜻을 고려하면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 설치미술에서는 관객의 참여가 작품을 활성화하고 의미를 드러내는 데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예술가가 관객과 작품이 관계 맺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기 위해 설치미술을 활용하고 있다.
- 설치미술을 극장에 비유하여 관객이 배우이고 작가는 감독, 작품이 곧 무대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 에르네스토 네토는 자신의 작업이 활기를 띠도록 만드는 에너지는 관객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관객은 다른 문화, 사회, 역사를 구현한 독자적인 ‘세포’인데, 이 세포들이 하나로 모여 자신의 작품을 이룬다는 것이다.
-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만난 작품이 무엇이든 그 하나가 모든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는 일이다. 조각, 회화, 퍼포먼스, 개념 미술, 몰입형 미술, 혐오감을 일으키거나 반대로 마음을 차분하게 달래주는 작품, 도전적이거나 자극적인 작품, 압도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그리고 솔직히 실망스러운 작품. 너무나 많은 유형과 형식의 작품이 미술 세계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모두가 현대미술이다. 그러므로 내가 본 작품은 전체의 매우 작은 일부에 불과하고 공교롭게도 나는 내 취향이 아니거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종류의 작품과 마주친 것뿐이다. 어쩌면 작가의 개인 경험이 듬뿍 담긴 작품이나 아니면 약간은 정치적 의미가 담긴 작품을 만났더라면 더 큰 감흥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 작품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을 뿐.
- 전설적인 미술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정말 독창적인 작품은 대개 첫눈에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다음 단계는 작품을 너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자신이 하찮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그 작품이 하찮아지는 것도 아니다. 문학, 음악, 무용 분야에서도 그렇듯이 파악하기 수월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난해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사람마다 판단을 지배하는 준거 기준을 갖게 마련인데, 그 기준틀을 연마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1907)을 예로 들면, 이 하나의 작품은 준거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평면에 다른 시점을 서로 조합시킴으로써 회화의 언어를 진보시킨 작품으로 볼 수도 있고, 여성을 이상화하지도 않고 순종적인 모습으로 그리지도 않았으니 서구 회화의 전통과 단절을 상징하는 작품이라 여길 수도 있다. 반면에 사창가에 몇 번 드나든 이후 성병에 걸릴까 봐 두려운 작가의 마음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읽기도 한다.
- 현대미술을 이해할 때 가장 좋은 출발점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하나의 작품 또는 한 작가를 선택해서 조금씩 배워 가는 것이다.
- 단어 하나하나가 그렇게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단어들이 연결되어 만들어낸 전체 단락은 일부러 의미를 비껴가는 듯하다. 단어들의 맹공격을 힘겹게 뚫고 겨우 파악한 문장은 알 듯 말 듯 여전히 모르겠다.
- 미술의 세계에서 쉬운 영어를 찾기란 왜 이렇게 어려울까?
- 2012년 예술가 데이비드 레빈David Levine과 사회학자 알릭스 룰Alix Rule은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전시 소식을 대략 하루 세 번 이메일로 제공하는 이플럭스e-flux를 통해 받은 언론 홍보문을 샘플로 해서 ‘아트스피크Artspeak’의 형태에 대해 연구했다. 두 사람은 지난 13년간 받은 이메일에서 사용된 어휘, 문법, 문체를 분석해 아트스피크의 사용 패턴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독특한 언어를 ‘인터내셔널 아트 잉글리시International Art English(IAE)’라고 이름 붙였다.
- 인터내셔널 아트 잉글리시에서는 새로운 명사가 계속 만들어진다. 가령 ‘잠재력’이란 의미의 ‘potential’ 대신 ‘potentiality’를 사용하고, ‘경험’이란 의미의 ‘experience’ 대신 ‘experientiality’라는 명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단어는 길면 길수록 좋으므로 예술가들은 뭔가를 이용할 때 ‘use’하지 않고 ‘utilize’한다. 과장법에 대한 강박감이 있어 단순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하지 않고, 최근 한 전시기사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현실과 가상, 시간과 장소, 기억의 속성과 망각에 대한 인식을 흩어놓는다’고 표현한다. 그러고 보니 반대 개념을 나열하는 경향도 있다. 뭔가를 한번에 ‘드러내기도 하고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는’ 작품은 ‘내부 심리와 외부 현실’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 정말로 좋은 글은 읽기 힘든 만큼 큰 깨달음을 주는 법이다.
- 2016년 여름, 16일 동안 이탈리아 이세오호Lake Iseo에서는 사람들이 말 그대로 물 위로 걸어 다니는 일이 가능했다. 밝은 노란색 천을 씌운 이십만 개의 물에 뜨는 입방체가 육지와 호수 안의 작은 섬을 연결했기 때문이다. <떠 있는 부두The Floating Piers>(2014~2016)라는 제목의 이 공공미술은 크리스토Christo와 고인이 된 잔 클로드Jeanne-Claude 부부가 고안한 작품으로, 그해 여름 인스타그램에 ‘#FloatingPiers’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가장 많이 등장한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 작품에 대해 크리스토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진행했던 다른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떠 있는 부두> 역시 완전히 무료였고 모두에게 열려 있었어요. 티켓도, 오프닝 행사도, 소유자도 없고, 예약할 필요도 없었죠. <떠 있는 부두>는 길거리의 연장선이었고 우리 모두의 작품이었어요.”
-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공공미술에서 실제로 대중은 얼마나 고려되고 있는가? 바꿔 말해 평범한 사람들에게 작품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 시카고에 설치된 애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2004) 같은 영구적인 조형물은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을 조성하는 데에도 한몫했다. 강낭콩 모양에 곡면이 거울처럼 사방을 반사하는 이 작품을 설치한 공원은 이제 이 도시를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명소가 되었다.
- 뱅크시Banksy
- 길거리 예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길거리 예술을 지키고 작품의 미래를 결정짓는 사람은 누구이며, 길거리 예술을 소유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궁극적으로 거리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 사실 인터넷 아트가 처음 개발되던 초창기 시절, 인터넷 아트의 궁극적 목표는 집에 머무르는 관객을 작품으로 직접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 어쩌면 예술의 핵심은 예술이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녔다고 믿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몸부림, 그 자체에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도 그 믿음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결국, 상상은 우리의 몫이 아니던가?
- 미국의 공식표어이자 달러에도 표기된 ‘우리가 믿는 하느님 안에서In God we 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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